현대유화 매각 다시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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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더미에 앉은 현대석유화학을 파는 작업이 순탄하지 않아 24일 열리는 채권금융단 운영위원회의의 결정이 매각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22일 석유화학 업계와 채권 금융기관에 따르면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해 발 빠르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던 현대유화의 매각은 주요 채권단 간의 이견이 표면화하고 있는 데다 인수 경쟁에서 밀렸던 미국의 코크사가 새 인수안을 내걸고 채권단을 상대로 설득에 나서면서 다시 안개 속에 휩싸였다.

특히 지난해 말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가 된 LG화학-호남석유화학 컨소시엄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결합 심사 통과를 전제로 한 조건부 매매 계약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어서 상황에 따라 매각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현대유화의 주요 채권은행의 하나인 국민은행은 최근 채권단 주관 금융기관인 우리은행 측에 "우선 매각협상 대상자 선정 경위를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는 요지의 공문을 보냈고 교보투신 등 일부 채권 금융기관들은 우리은행의 매각 협상안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박영봉 매각추진 팀장은 "빌려 준 돈을 가급적 많이 받는 쪽으로 협상의 무게를 두고 있고 코크사가 새로 내놓은 제안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채권단 전체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의 매각 작업을 돕는 미국계 증권회사인 골드먼삭스는 최근 코크사의 새 제안 내용에 대한 검토 결과를 우리은행 측에 넘겼다.

코크사는 현대유화를 인수하면 바로 1조원 가량을 현금으로 갚는 등 현대유화의 빚 2조3천억원을 한푼도 깎지 않고 단계적으로 모두 상환하겠다고 제의하고 있어 LG-호남의 인수안보다 다소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 일부 채권 금융기관의 평가다.

기업 결합 심사는 현대유화 매각의 마지막 관문이다. 대표적 플라스틱 가공 원료인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등 현대가 생산하는 10여개의 유화 공장을 LG와 호남이 나눠 가져 갈 경우 대부분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어 공정위의 판단에 따라선 이들 제품의 생산공장을 인수 후에 다시 제3자에게 팔아야 한다.

공정위의 김석호 기업 결합 과장은 이와 관련해 "현대유화의 인수 업체가 결정되면 기업 결합 내용을 면밀히 들여다 볼 것"이라며 "고합의 당진공장 매각 때 심사했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혀 기업 결합 심사를 엄격히 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고합의 나일론 필름 부문(당진 공장)사업 매각과 관련해 코오롱이 공장 두 개 라인을 모두 인수하면 이 분야의 시장점유율이 59%로 높아져 독점 폐해가 우려된다며 한 개 라인을 두 달 안에 팔라는 판정을 내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유화의 공장을 떼어내 팔면 LG-호남이 현대유화를 인수해 유화 업계의 양강 구도를 형성한다는 당초의 인수 전략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내다 봤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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