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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통독 땐 한국인이 더 뜨거운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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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마티나 니블링 브리스닉 전 공보참사관(사진 속 사진 왼쪽)과 독일 전통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는 도필영 공보관. 재한 독일 외교관 가운데 가장 많이 싸웠던 브리스닉이었지만, 몇 년 뒤 그가 독일을 방문하자 “우리는 친구”라며 환대했다. [김형수 기자]

한국 기자들에게 ‘독일 취재를 위한 LTE는?’이란 퀴즈를 낸다면 아마도 이 분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도필영(66) 주한 독일대사관 공보관이다. 1972년부터 2013년까지 41년 동안 한국과 독일 두 나라의 다리 구실을 하며 숨가쁜 외교 현장을 지켜왔다. 독일 쪽 대사 11명 총리 5명 대통령 5명을 보좌했고, 박정희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우리나라 대통령 8명과 독일 측 관계를 수발했다. 지난해 근속 40주년을 맞은 도 공보관에게 공로 메달을 수여한 한스 울리히 자이트 당시 주한 독일대사가 1년 더 일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 한·독 협력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며칠 전 도 공보관이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2월 말로 주한 독일대사관 근속 41년을 무난히 마치고 퇴임하게 되어 감사 의미로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으니 꼭 참석해주면 고맙겠다는 초대장이었다. 서울 한남동 대사관거리의 터줏대감으로 통하던 그가 그 무거운 짐을 벗고 자유인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은 반가우면서도 섭섭한 감흥을 남겼다.

 “일하는 동안 큰 잘못은 없었다고 자임하지만 작곡가 윤이상과 송두율 교수 문제로 두 나라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를 때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곡가 진은숙처럼 한국 문화인이 독일에서 이름이 드높을 때는 으쓱했고요.”

 도 공보관은 “NGO(비정부기구) 몇 곳에서 도와달라는 청이 와서 40년 경험을 값지게 쓰려고 구상 중”이라며 “우선은 놀아야죠. 독일어로 ‘슈뤠버 가르텐’이라 부르는 주말농장에서 밭일 하면서 청계산과 양재천을 누비는 맛이 일품이거든요”라고 했다.

 그는 “올해는 한·독 수교 130주년(1883년 11월 26일), 한국 광부의 독일 파견 50주년(1963년 12월 7일)으로 한층 성숙해진 두 나라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때”라고 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이 박근혜 정부 출범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시점이 좋다는 것이다. 한국이 독일의 과학기술, 복지, 통일, 장인(마이스터)제도, 강력한 중소기업 등을 모델로 하면 좋을 것이라며 “특히 자기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독일인의 책임의식을 배웠으면 싶다”고 말을 보탰다.

 “공보관 생활의 하이라이트는 1989년과 90년이었죠.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서독과 동독이 통일되자 한국 언론 수십 곳에서 분초를 다퉈 취재 요청을 해왔어요. 당사자인 독일인들보다 더 감동하고 기뻐하는 우리 기자들을 보면서 울컥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옛일을 회상하던 도 공보관은 “여자 후배들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남자 후배들의 분발을 희망한다”며 “언제나 내 전화와 마음은 열려있다”고 말했다.

 도필영 공보관의 근속 축하 잔치는 27일 오후 7시 서울 다동 비어할레에서 열린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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