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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맞으며 이야기꽃 낭만 인문학 강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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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부산 동구청 주최로 22일 저녁 자성대공원에서 열린 ‘달빛 인문학을 말하다’ 행사에 참가한 주민들이 심봉근 전 동아대 총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송봉근 기자]

22일 오후 6시 부산 자성대 공원 입구 영가대(永嘉臺). 조선통신사들의 출발지였던 이곳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금세 500여 명으로 불어난 인파가 공원을 오르자 길다란 줄이 생겼다. 이들이 공원 정상 부산진 지성(釜山鎭支城, 부산시 지정기념물 제7호) 앞 광장 자리에 앉자 부산 YWCA 브라스밴드가 ‘문 나이트 세레나데’를 연주했다.

 보름을 이틀 앞둔 달빛에 취한 청중이 ‘앙크르’를 연발하자 ‘나의 살던 고향’ 같은 신나는 곡들이 더 연주된다. 이어 정행심(53·시인)씨의 사회로 ‘달빛, 인문학을 말하다’ 강좌가 시작됐다.

 이날 강좌는 심봉근(70) 전 동아대 총장의 ‘역사 속 자성대 가치 재조명’이었다. 소나무에 매단 스크린에 자료를 비춰가며 자성대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국내 성곽연구의 권위자인 그는 “자성대는 왜성을 우리가 고쳐 사용한 것이다. 성을 쌓은 각도가 수직이 아니고 경사진 점과 성문을 개축했다는 기록들이 이를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날씨가 쌀쌀했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강의가 끝난 뒤 공원 내 조선통신사 역사관 관람이 이어졌다. 강의 뒤 자성대 공원 주변 식당들은 만원이었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뒤풀이 모임을 하기 때문이다.

 동구 어린이집 연합회 회원 10여 명은 매달 이 강좌를 듣고 월 모임을 한다. 정정숙(56) 회장은 “바쁜 회원들이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는데 매달 이 강좌에 맞춰 모임을 하니까 머리와 입이 넉넉해진다”고 말했다. 부산진 시장 번영회 2층 부인회원 100여 명도 참가했다.

 주복희(57·여) 경남여고 교장도 “달빛 아래 듣는 강의여서 감동스럽다. 가까이 있어도 자성대의 유래를 잘 몰랐다. 다음부터는 학생들과 함께 듣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인문학 강좌가 진화하고 있다.

 부산 동구는 현장을 찾아가는 강의를 매달 음력 보름 전후로 열고 있다. 지난해 6월 1일 구봉산 봉수대에서 열린 장혁표 전 부산대 총장의 ‘하늘, 달, 바다 그리고 인간’을 시작으로 이번이 7회째다. 처음에는 200여 명 참석했으나 갈수록 참가자가 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세계시민사회센터는 부산대 인문학연구소와 공동으로 ‘동서양의 인문학 산책’을 마련한다. 다음 달부터 10월까지 매월 넷째 주 월요일마다 해운대 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첫 강의는 부산대 김용규 교수가 자연 예찬에 관한 불멸의 고전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강의한다.

 정영석 부산 동구청창은 “어떤 일을 하든지 인문학적인 소양이 바탕으로 깔려야만 잘할 수 있다. 다양한 인문학강좌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강좌를 찾아 들어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글=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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