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감이 있는 音의 물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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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이후 핀란드 최대의 수출상품'.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핀란드 출신 여성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49) 를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몇년간 사리아호는 그야말로 음악계의 '떠오르는 해'였다 'BBC 뮤직 매거진'은 1997년 창간 5주년 특집에서 사리아호를'주목해야 할 작곡가'중 한 명으로 꼽았고, 뉴욕필하모닉은 99년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6명의 작곡가에게 신작을 위촉하면서 그를 빼놓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그의 오페라 '먼 곳의 연인'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자 뉴욕 타임스는'서정적인 걸작'이라고 호평했으며, 디 차이트는 전면을 할애해 특집 기사로 다뤘다.

트리폴리의 귀족 부인 클레망스를 찾아 항해하던 중 불치의 병에 걸리는, 12세기 프랑스 음유시인 조프레 루델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이 오페라는 지난 2일 켄트 나가노의 지휘로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상연된 데 이어 내년 미국 산타페 오페라에서도 소개될 예정이다.

런던필하모닉 또한 이번 시즌 그를 '집중조명 작곡가'로 선정했다.

사리아호의 최근작 세 편을 담은 음반이 소니 클래시컬 레이블에서 나왔다. BBC심포니.핀란드 방송교향악단 등의 녹음으로 메이저 음반사에서 생존 작곡가의 작품을 선뜻 내놓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세계 음악계가 사리아호의 작품에 남다른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지휘 역시 핀란드 음악의 산실 시벨리우스 음악원 출신인 페카 살로넨(LA필하모닉 음악감독) 이 맡았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작품은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를 위해 작곡한 협주곡'성배(聖杯) 의 무대'와 소프라노 돈 업쇼와 합창단이 가세한 '영혼의 성(城) ', 첼리스트 안시 카투넨이 협연한'해안선'등.'영혼의 성'은 다섯가지 사랑의 개념을 노래한 것이며, '해안선'은 관현악의 바다를 떠다니는 배(첼로) 의 모습을 그렸다.

뚜렷한 윤곽의 선율 대신 음색의 물결이 서서히 변해가는 분위기와 소리의 풍경을 제시하는 게 사리아호 음악의 특징이다.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흥미로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일상의 소음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핀란드 헬싱키 태생인 그는 여섯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에는 미대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요즘도 오선지에 악상을 스케치하기 전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한다.

작업실 책상에는 언제나 80년대 초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구입한 프리즘이 놓여 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빛의 스펙트럼을 관찰하면서 이를 소리로 표현해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색채의 음악'이라 부른다. 컴퓨터 합성음도 곁들여가면서 소리결을 만들어간다.

그가 가진 음색의 팔레트에는 현악합주가 기본 색채로 채워져 있지만, 여성의 목소리와 첼로.플루트도 즐겨 쓴다.

결혼 1년만에 이혼한 그는 82년부터 삶의 여유와 자유로운 사고를 찾아 파리에서 살고 있다. 88년 이곳에 있는 음향연구소(IRCAM) 에서 만난 동료 작곡가 장 밥티스트 바리에르와 재혼했다.

99년 1년 동안 모교인 시벨리우스 음악원에 교수로 있으면서 오랜만에 고국 생활을 해보았지만 답답함을 느껴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두 자녀(알렉스.11, 알리사.6) 에게 핀란드어를 가르치고, 남편의 도움으로 인터넷에서 현대음악 음반을 판매하는
인디 레이블(http://www.petals.org)도 만들었다.

또 현대음악은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과 글.비디오.영화.사진.애니메이션을 담은 CD롬 '프리즈마'를 보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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