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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태국판 4대 강 공사의 성공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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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홍구
부산외국어대 교수·태국어과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컨소시엄이 총 12조원 규모의 태국 통합물관리사업 10개 전 분야의 최종예비후보로 선정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선협상대상자 리스트에 포함된 6개 업체 중 최고점을 받아 최종 낙찰자 선정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이들 선정사들이 3월 중 세부 최종 내역서를 제출하면 4월 중순께 최종 사업자가 결정될 예정이다.

 태국 현지 언론들의 한국 컨소시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사업진행과 관련한 우려의 소리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 태국의 한 일간지는 5년 계획의 공사기간이 지연될 가능성과 함께 대형 댐 건설과 관련해 환경영향평가가 실시되면, 주민들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에는 이번 국제입찰에 대한 태국 환경단체의 위헌소송 제기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태국에서는 댐 건설 계획이 지연되거나 취소된 적이 적지 않았다. 우선 한국이 참여할 가능성이 많은 깽쓰어뗀 댐 건설은 1991년 최초로 계획된 것이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 부닥쳤으며, 2011년부터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매웡담 댐 건설도 수십년째 지연된 채 2016년 건설이 예정되어 있다. 깽끄룽 댐은 1980년 초 타당성 검사를 실시했으나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로 연기되었다. 깐짜나부리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위치한 남쫀 댐 건설계획도 삼림벌목, 기후변화, 수자원 파괴, 지진 발생 등을 우려해 백지화된 바 있다.

 이런 사실을 주시하면서 태국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태국 헌법 67조는 천연자원 개발과 환경 보전에 대한 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주민 고발권을 보장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후 태국의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은 이른바 탐마랏(좋은 통치)에 대한 가치를 중시한다. 탐마랏은 좋은 거버넌스(협치)와 유사한 내용으로 시민참여를 비롯해 투명성, 책임감 등을 통치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환경 보전이나 주민동의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법부의 판단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태국의 사법부는 현 여당인 프어타이당에 비우호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례로 헌법재판소는 프어타이당의 전신이었던 정당들을 두 차례나 선거법 위반으로 해산한 적도 있다.

 이번 사업은 2011년 11월 한국을 방문해 4대 강 사업 현장을 둘러본 적이 있는 탁신 전 총리의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현 정국은 친탁신과 반탁신 세력으로 양분돼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측은 프어타이당을 위시한 친탁신 세력이지만 국왕과 군부, 기득권층을 배후에 두고 있는 제1야당 민주당을 포함한 반탁신 세력들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부터 두 세력은 헌법 개정과 국민 화합 법안 통과를 놓고 한 치의 양보 없이 대결국면을 조성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2006년 쿠데타로 퇴진한 탁신 전 총리 사면을 목표로 하고 있어 정국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만일 집권세력의 변화가 초래되면 이 사업의 지속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른바 태국판 4대 강 공사가 성공하려면 이 같은 태국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대규모 사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의 조달이나 부정부패 가능성으로 야기될 공사 지연도 예상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 컨소시엄 업체들의 최종 낙찰자 선정을 기대하면서 이번 기회가 태국뿐만 아니라 인근 라오스·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지역 신규 사업 추진을 위한 교두보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홍구 부산외국어대 교수·태국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