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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 상주본, 국보 간송본과 같은 판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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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윗 부분 작은 글씨가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의 필사 부분이다.

5년 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뒤 자취를 감춘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이하 상주본)을 본격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이상규(60) 교수. 그는 2008년 7월 상주본의 실체가 언론에 처음 공개된 다음날 취재팀의 요청을 받고 상주 현장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상주본의 실체를 확인하고 언론사가 찍은 비디오 화상자료를 제공받아 내용을 분석해 왔다. 이 교수가 4년6개월 연구한 결과를 최근 한글학회가 펴내는 학술지 ‘한글’에 발표했다.

 상주본 해례본의 전체 33개 장(앞뒤로 2쪽) 중 13개 장을 분석한 이 교수는 두 가지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먼저 상주본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이란 점이다. 책의 크기나 체제, 지질, 구두점, 성조 표시 위치 등이 일치했다. 또 하나는 행간의 필사 기록 부분이다. 상주본의 가치를 1조원으로까지 추정하는 근거였다. 이 교수는 “간송본에는 없는 것으로 필사 부분은 훈민정음의 음계가 중국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적은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상규

 필사의 주인공에 대해 그는 “필사 기록과 유사한 주장은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난다. 상주지역에 살았던 음운학자인 박연이나 이만부, 이형상의 후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주본을 ‘잔엽 상주본 훈민정음’으로 명명했다. 책의 상당 부분이 떨어져나간 낙장본이란 뜻이다.

 이 교수는 “상주본은 떨어져 나간 부분이 너무 많아 문화재적 가치는 간송본과 비길 바가 못된다”며 “그렇지만 비교를 통해 간송본의 의문을 푸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고 설명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뒤 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상주본은 처음 언론에 공개한 배익기(50)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은닉한 상태다.

 “인류의 문화유산이 낱장으로 분리돼 은닉되고 언제 훼손될지 몰라 안타깝습니다. 하루빨리 상주본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교수는 국립국어원장 재직 시 훈민정음을 영어·중국어·베트남어·몽골어 등 4개 외국어로 번역해 해외에 보급하는 등 훈민정음 연구의 세계화에 애썼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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