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구악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조말섭, 외국사신이 사발시개 하나를 궁중에 선물했다가 크게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정에서는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시계를 보고 이는 필시 나라를 해치는 요괴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한낱 요물에 지나지 않았던 시계가 개화기에 들어서서는「모던·보이」의 휘장으로 악했다. 소위 말뚝시계는 시간을 보는 구실보다도 멋장이의 「액세서리」, 그래서 옛날의 「모던·보이」들은 사진을 찍을 때면 으례 왼쪽 손을 치겨올리는 기괴한 「포즈」취했었다. 말둑시계를 자랑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어떤 숙녀 하나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골치가 아프다고 연방 손을 올려 이마를 짚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 숙녀는 골치가 아팠던 것이 아니라, 팔뚝에 찬 금시계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닭소리를 듣고 시간을 점치던 시골에서도, 이제는 시계가 하나의 생필품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시계하나를 두고 생각해도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그러나 시계에 대한인식은 요물에서 사치품으로, 사치품에서 생필품으로 바뀌어갔지만, 시간관념은 예나 오늘이나 태고연한 상투를 달고 있는 것 같아 딱하다. 「스케줄」이니 「어포인트먼트] 니 하는 외래어가 쑥스럽지 않게 유행되고 있으면서도, 한 옆애는 여전히 삼리언·타임」.좀 심해지면, 시간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 도리어 행세깨나 하는 사람으로 통할 때도 있는 것이다.
『각하,「파티」시간이 다 됐습니다』『아니, 한바퀴만 더 돌다가가세. 「파티」 시간에 꼭 맞춰 나타나면 시골사람이나 한가로운 사람으로 오해되거든!』 운전수와 고관의 이러한 대화쯤은 연극대사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다방에 가봐도 시계와 눈 씨름을 하며 한 시간쯤 혼자 앉아있는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최근「타임구악부」란 것이 결성되었다. 시간을 지키자는 운동은 많았지만, 본격적인 민간인 단체가 생겨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시계만이 근대화하고, 「시간」은 아직도 요물시대에 머물러있는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타임구악부」의 앞날을 기대해둔다. 「시간은 금」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는 하나의 생명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