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팀이 유망주 뽑는 제도, 져주는 농구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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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해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겨도 짜릿하지 않고, 져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남자 프로농구가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부실한 제도와 그 틈을 파고드는 구단들의 이기주의 탓이다.

 프로농구는 10개 구단 중 6위 이상을 하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6강 경쟁은커녕 6강에 들지 않으려는 낯뜨거운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몇몇 구단은 6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들러리가 될 바에야, 7위 밑으로 떨어져 신인 드래프트에서 유리한 순번을 뽑겠다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다.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는 경희대를 대학 최강으로 이끈 김종규·김민구·두경민 ‘빅3’가 나온다. 현행 제도에서 3~6위가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뽑을 확률은 1.5%에 불과하다. 반면 7~10위 4개 팀이 드래프트 1순위가 될 확률이 23.5%다. 올해 한 시즌을 포기하면 쓸 만한 대어를 낚을 수 있다는 유혹에 흔들리는 것이다.

 하위권에서 최선을 다하는 팀은 삼성 정도다. 김동광 삼성 감독은 “이겨도 기분이 좋지 않다. 6강에 대한 의욕이 없는 팀들이 많은 것 같다”고 불쾌해했다.

 한국농구연맹(KBL)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지난주 져주기 의혹에 대해 엄중 경고를 한 데 이어 18일에는 제도개선소위원회를 연다. 우선 논의할 내용은 신인드래프트 1순위 선발 확률 재조정이다. 하위팀에 주는 메리트를 줄여 리그 막판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유명무실해진 자유계약선수(FA) 제도도 손봐야 한다. 지금은 팀을 옮기고 싶어도 구단에서 샐러리캡(선수 전체 연봉)의 30%를 준다고 하면 무조건 잔류해야 한다. 자유가 없는 자유계약선수 제도다.

 지난 10여 년 동안 프로농구는 투자를 안 해도 유능한 선수를 뽑아서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온실 속에 안주해왔다. 그 속에서 10개 팀의 위상은 ‘도토리 키재기’처럼 고만고만해졌다. 한국 농구가 농구대잔치 시절의 인기를 되찾으려면, 당시의 현대·삼성·기아 같은 명문 구단이 나올 수 있는 여건과 제도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해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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