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홍구 칼럼

국민통합과 정책의 연속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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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날 아침 박근혜 당선인이 국립묘지를 참배하며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세 대통령의 묘역을 찾은 것은 상징성이 뚜렷했다. 대선 과정에서 유난히 강조했던 국민통합의 중요성을 한번 더 부각시키는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의 연속성을 지켜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시하는 것이었다. 위험수위에 근접한 사회분열을 극복하는 국민통합이 공간적 차원에서의 노력이라면, 국가의 정통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정부정책과 운영의 연속성은 시간적 차원에서의 필수요건이라 하겠다. 그러나 격동하는 국내외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새 전략과 조치를 찾기에 바쁜 가운데 국민통합과 정부의 연속성을 다 같이 유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서의 분열과 단절은 국민들의 눈에 실제보다 훨씬 크게 비춰지는지도 모른다. 민주화 이후 여야 간에 수차례 정권교체를 거듭하면서도 정부 주요 정책의 연속성이 일관되게 유지된 사례들을 새삼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9년 범국민적 논의와 여야4당 합의에 의해 확정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다섯 대통령으로 이어오면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대한민국의 통일방안으로 유지해온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한반도에 두 국가체제가 공존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남북이 공조하며 평화적으로 노력하자는 이 통일방안은 한때 북한의 긍정적 반응으로 유엔 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이란 통일로 향한 일련의 진전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은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북한의 고집으로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한국식 2국가 해결책(Two State Solution)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해결책보다 아직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또한 500만 표 차이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가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힘들게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을 실현해 가는 모습에서 정부정책의 연속성과 정통성의 연계를 극명하게 볼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관계의 정치·경제적 중요성, 동아시아 해역이 열강의 세력 각축장이 돼 가는 안보환경에서 해군력을 포함한 자주국방력 강화의 필요성,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의 최대 장애요인으로 꼽히는 수도권 집중현상에 대한 대책의 시급성을 절감하고 한·미 FTA 체결, 제주해군기지 건설, 세종시 건설이란 획기적 정책을 발의했었다. 국정을 이어받은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 제주해군기지, 세종시 건설이란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현실화하느라 치른 정치적 대가는 막대했지만 나라와 정부의 연속성을 지키는 데는 응분의 공헌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5년 임기의 마지막 주일을 맞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업적이나 공과에 대한 종합평가는 물론 시기상조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여론에 비춰지는, 우리가 반드시 연속성을 유지하며 추진해 나가야 할 몇 가지 정책을 떠올릴 수 있다. 첫째는 서울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를 주관하면서 G7 선진국그룹과 중국, 인도, 브라질 등 BRICS 신흥대국들의 연계고리를 제도화하며 캐나다, 호주 등 이른바 중강국(middle power)들과의 연대를 강화한 정책을 보다 강력하게 계속 추진하는 것이다.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수습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G20은 근래에 들어와 다소 침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일본이 불을 붙인 작금의 환율조정경쟁 같은 위험한 흐름을 타개하는 데는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온실가스 감축, 자연보존 등 국제적 공동노력을 이끄는 환경분야의 선두그룹에 이미 동참하고 있는 한국의 위상을 지켜가는 과제다. 특히 에너지절약과 신재생에너지 개발로 환경보호와 경제개발을 동시에 성공시키겠다는 우리의 녹색성장 계획은 많은 개발도상국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과연 이러한 지구촌의 기대에 우리가 부응할 수 있는가는 간단한 과제가 아니지만 이미 그 분야에서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지켜가는 것도 경제와 안보를 포함한 전방위 외교의 필수요건이라 하겠다.

 이렇듯 국가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정통성과 국민통합을 유지·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항상 유의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독재나 왕조체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속성 유지의 교조적 집행은 엄중히 경계해야 될 것이다. 그러기에 다음 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는 국가정책의 연속성과 변화에 대응하는 창의성 사이의 균형을 슬기롭게 조율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