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모는 자식 성적 흐름 중시 … 주식도 마찬가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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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호 22면

학창 시절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을 때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과 두근거림을 기억하는가. 사실 자기가 공부해서 친 시험이니 결과가 어떨지는 스스로 대략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점수를 확인해야지만 마음으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이 작용하는 탓이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지난해 4분기(2012년 10~12월)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이 올린 실적, 즉 성적표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 성적표를 본 소감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수출기업들은 급작스러운 환율 약세로 매출에 타격을 입었고, 내수기업은 내수기업대로 꼭꼭 닫힌 소비자들의 주머니로 인해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인간이기에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고, 단기적인 해소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일러스트 강일구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미래를 먼저 반영하는 주식시장의 특성 덕에 이러한 실적 부진이 상당 부분 주가에 반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려야만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부담감을 덜어낸 셈이다. 이는 10등을 했더라도 엄마가 20등을 기대하고 있었다면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주식시장의 기본원리다. 최근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은행 업종이 슬금슬금 올라간 모습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올해 최고는 아닐지라도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종목이 무엇인가로 옮겨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삼성전자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시황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스마트폰 한 날개만 가지고 투자자들의 기대치를 넘어서긴 쉽지 않아 보인다. 싼 가격을 무기로 중국 저가 스마트폰 시장의 개화라는 기회를 맞은 중국 업체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반면 미리 매를 맞은 현대자동차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파업으로 시작해 환율 하락과 엔저 현상이 본격화된 올 초까지 주가가 꾸준히 빠져온 탓이다. 내수 판매가 급감하는 점이 우려되긴 하지만 중국에서 탄탄한 입지를 증명하고 있고 환율 하락세도 일단락되는 모습을 보여줘 주가의 추가 하락은 제한적이라 판단된다. 다만 공장 건설과 시장 확장이란 성장 곡선이 멈춘 상황이라 크게 오르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손해보험업 주목해 볼 만
폭설과 규제라는 펀치를 맞은 손해보험업도 주목해 볼 만하다. 주식 투자의 정석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싸질 때는 싸질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인데 그것이 구조적인 부분이 아니라 일시적인 요인이라면 좋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 손해보험에서 구조적인 성장의 관건은 인보험 신 계약의 증가 여부다. 현재 손해보험사들은 소비자들의 노후 대비와 의료비 지출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신 계약 성장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즉 구조적 요인의 훼손이 없다는 뜻이다. 반면 폭설이 야기한 손해율의 증가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사건이다. 규제도 내용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사안들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게임·유통·금융·외식 등 거의 전 부문에 걸쳐 규제의 수위가 올라가고 있어 실적 우려와는 별개로 해당 기업들의 장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반면 아주 일부에 해당되는 얘기지만 규제 추세가 완화로 흘러가는 곳이 있다. 바로 미디어 업종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문화콘텐트의 육성을 천명하고 미래창조과학부로 방송사업자 관리를 이관하는 등 산업의 변화를 유도할 만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방송매체의 다변화와 인터넷 보급으로 시청자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지상파 부문의 우호적인 환경 변화가 예상된다. 드라마에서만 주로 사용되던 간접광고가 예능 프로그램으로까지 확대돼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재원이 확대됐다. 또 현재 논의되고 있는 광고총량제가 허용될 경우 광고 편성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외에도 지상파 자체적으로 제작 단계부터 수출을 염두에 둔 기획을 하고 케이블TV에 재전송 대가를 요구하는 등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장기업들은 지난해 장사에 대한 보고를 마무리하고 2013년 한 해 동안 분기마다 네 번의 새로운 성적표를 내놓게 된다. 투자자에게 기업이 내놓는 실적은 매우 중요하다. 살지 팔지, 늘릴지 줄일지를 결정하는 투자 판단에 매우 중요한 근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주가는 기업 실적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영속적인 활동을 전제로 하는 기업에 3개월은 매우 짧은 기간이다. 때론 매출이 당분기에 인식될 수도 있고 여차 저차한 사정에 의해 다음 분기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나온 단기적인 숫자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이 “어닝 쇼크, 어닝 서프라이즈”를 외치며 사고 팔고를 반복한다면 이는 마치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고 “너는 내 아들이다, 아니다”를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워런 버핏, 투자기업 분기실적 공개 안 해
워런 버핏은 이런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코카콜라 등 본인이 투자하는 회사들에 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고 연간 딱 한 번만 발표하는 정책을 도입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찰나가 영원을 좌우하지 않게 하는 조치인 셈이다.

분기 실적 정보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안은 어떤 주식에 투자했을 당시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투자 아이디어가 맞게 흘러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숫자가 단지 지난해에 비해 늘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데 그치지 않고 숫자의 이면에 숨은 뜻을 찾아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한 2~3분기의 실적이라는 점을 선으로 연결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실적 점검에도 일회성이 아닌 꾸준함이 필요하다.

어리석은 부모는 지난번보다 성적이 올랐는지 내렸는지만 신경 쓰지만, 현명한 부모는 최종 시험에 합격할 점수가 되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성적을 냉정히 판단한다. 모두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춘 현명한 투자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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