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한국 특유의 소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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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몇년전 처음으로 한국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제일 먼저 친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 특유의 소음이었다. 아침은 어김없이 각종 소음으로 시작되곤 했었다. 그때 내 생각으론 한국 사람들에겐 아침잠을 거의 강제적으로 깨워주는 소음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괘종시계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소음의 선두는 조그마한 일본제 「택시」들- 새나라라든가 「닷도산」이라든가- 이다. 이들이 날카로운 경적과 함께 좁은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하면서 날이 밝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각종 행상들이 좁은 거리를 누빈다. 두부 장수의 종소리, 야채 장수의 외침, 엿장수의 가위 소리 등등- 특히 엿장수의 가위 소리는 어린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수반하게 된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들이 종알대며 빈병, 다 헤진 신발, 고물 등을 들고 나와 「엿」과 바꿔먹는 광경이 꽤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건 완전히 물물교환이 아닌가.
그러나 그때 내가 가장 자주, 가장 갑작스럽게 놀라곤 했던 소음은 다름 아닌 기차의 경적이었다. (내가 살던 집이 기찻길에서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리는 대개가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너무나도 날카로운 소리였기 때문에 잔뜩 신경질이 났던 나는 『예고나 하고 울렸으면…』 생각할 지경이었다. 갑작스럽다는 점에서 기차 소리에 못지 않은 소리는 어둠도 아직 걷히지 않은 조용한 거리를 조용히 지나가다가 갑자기 대문 앞이나 창 밑에서 『갈치 사려!』라는 부르짖음이었다.
한데 그때나 이때나 소음이 아니고 하나의 정월 있는 음향으로 내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있다. 멀리서 들리는 다듬이 소리다. 이 소리는 처음부터 내게 한국의 멋을 가르쳐주었고, 때로는 다른 소음으로 잠이 깬 나를 다시 달콤한 늦잠으로 인도해주는 자장가의 구실도 해준 것이다.
3년 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나는 「한국의 소음」들과 나도 모르게 친숙해지게 되었다. 처음 같아서는 친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이 느껴졌던 이 짓궂고 끈질긴 한국의 소음에 친숙해져 있음을 느낌으로써 이방인인 나도 그만큼 한국이라는 나라에 가까워진 것이다.
◇필자=미 「찰스턴·뉴스·앤드·쿠리어」지의 특별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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