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씨 숨긴 돈 어떻게 찾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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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검찰이 1993년에 예금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12년 만에 찾아낸 것은 시중은행의 제보가 결정적 단서가 됐다.

검찰이 수상한 자금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 2월 초. 휴면계좌를 정리하던 은행 직원이 한 계좌에 예치된 73억9000만원의 주인을 찾는 데 실패하자 검찰에 알렸다. 검찰 관계자는 "제보를 받았을 때 '검은 돈의 액수가 워낙 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며 "돈과 관련된 사람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노씨가 숨겨놓은 돈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계좌는 93년 2월 31억원이 신탁예금 형태로 입금된 뒤 한 차례도 입출금되지 않았다. 은행 측은 거래실적이 없는 계좌를 5년마다 정리했으나 이 계좌는 금액이 많아 5년간 거래연장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은행이 계좌정리에 나섰고 예금주인 '이두철'이 유령 인물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두 달 동안 노씨 비자금 실무 관리인 등을 포함한 주변 인사를 조사했으며, 최근 노씨에게서 자신의 돈이라는 시인을 받았다. 검찰은 73억여원 중 과징금 등을 제외한 16억여원을 29일 추징한 뒤 이 사실을 공개했다. 노씨는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금융기관의 가.차명 계좌에 분산해 입금하거나 기업인들에게 빌려주는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관리했다.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해 노씨 비자금을 상대적으로 쉽게, 많이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다.

이전에도 검찰은 노씨 비자금을 맡아 관리한 쌍용그룹 김석원 전 회장과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 등을 상대로 재판을 벌여 비자금을 국고로 환수했다. 2001년 1월에는 나라종금에 차명으로 예탁된 노씨의 비자금 248억여원을 추징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전씨는 추적이 어려운 무기명채권.부동산 등의 다양한 형태로 비자금을 숨겨왔다.

전씨는 2003년 금융자산이 예금 29만원뿐이라고 법원에 신고했으나 대검 중수부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명동 사채시장을 조사하다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발견하기도 했다. 지난해 증여세 포탈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씨의 아들 재용씨는 167억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외할아버지(작고한 이규동씨)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중 73억여원이 전씨 비자금인 것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새롭게 확인됐다. 검찰은 지난해 전씨와 이규동씨 공동 명의의 서울 서초동 땅(도로) 118평을 발견해 압류 절차를 밟고 있다.

전씨는 비자금 관리를 아들 재용씨, 부인 이순자씨, 처남 창석씨 등 가족과 친인척에게 맡겼다. 검찰은 지난해 이순자씨와 친인척 등이 관리하던 130억원을 추징했다. 검찰은 전씨의 나머지 비자금이 부동산이나 해외 계좌 등의 형태로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 비자금이 더 있을 수 있어 계속 추적할 방침"이라면서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은 은밀하게 감춰져 있어 구체적인 제보가 없으면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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