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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 살 돈 아끼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함석지붕에 빗발이 떨어져 우릉우릉 비가 내린다. 쏟아져오는 빗줄기를 마루 끝에 지켜섰느라니까 문득 친구 S가 빗속에 떠오른다.
몇 번이고 죽음이란 걸 생각했노라는, 수면제를 찾아 약방문을 밀려고 한 적이 한 두번 아니노라는….
너무도 어름처럼 고생을 이겨왔던 그의 이야길 언젠가 밤늦도록 듣던 생각이 난다.
평소 그저 커다랗게 잘 웃고 덜렁덜렁 이야길 하곤 하는 그를 성격이 명랑해서 좋다고만 여겼었다. 그런 그에게 돌아서면 텅 빈 쓸쓸함과 삶의 회의가 울먹이고 있었다니.
지금도 타향에서 자취를 하며 동생들을 거느려야하고 겹쳐 이것저것 삶의 의미가 괴로움으로만 막아드는지 모르겠다.
난 그에게 띄워줄 위로의 말을 찾으며 책상 앞에 앉는다.
S, 살다가는 괴로움에 막혀 체할 수도 또 더한 괴로움에 맘 얹혀 숨막히도록 답답할 때도 있는 그라더라.
그러니 수면젤 먹음되겠니, 소화제를 찾아먹어야 싹 뚫려 내려갈 것 아니냐? 수면제 살 돈 아끼고 며칠 소화제나 사먹도록 해 응?
난 네 덜렁덜렁한 이야기랑 커다란 웃음이 보고 싶단다.
호두나무 잎새에 빗발이 곱다. (오길자·강원도 홍천군 홍천면 진리 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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