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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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조 때의 황희 정승은 독서를 할 때, 교대 교대로 한쪽 눈을 감고 읽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쪽 눈만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을 두눈을 동시에 다 사용한다는 것은 안정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워낙 인격이 원만했던 분이라, 비록 자기 눈이라 하더라도 혹사하질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현대의학의 안목으로 보면 황 정승의 그 독서 술은 불합리한 것이다. 그것은 눈을 아끼기는커녕 더욱 피로하게 한다. 볼 때는 두눈을 모두 뜨고 쉴 때는 두눈을 다 감는 것이 눈의 건강에 좋다.
눈만이 아니다. 인체나 정신이나 모두가 그렇다. 놀 때는 아주 놀고 일할 때는 아주 일하는 것이 능률을 올린다. 법으로 「바캉스」를 제정한 것은 불란서가 그 효시인데 거기에서는 무더운 여름한철이면 공장이고 회사고 숫제 문을 닫아 버린다. 한때는 황정승 식으로 사원을 교대제로 휴식을 시켜가며 조업을 해봤지만 그보다는 전원휴가를 하는 편이 능률적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월급을 주며 사원을 놀린다는 것은 합리적인 경영이 못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정반대이다. 삼복무더위 불쾌지수가 80∼90을 오르내릴 때, 사람들은 낮잠의 유혹이 아니면 신경질이나 권태 속에서 엿가락처럼 늘어지게 된다. 그러고서는 능률이 오를 턱이 없다. 싱싱한 기분으로 한 시간 일하는 것은 꿈결 속에서 10시간 일하는 것과 능률적으로 맞먹는다. 이런 논법으로 따져가면 삼복 중에 한 주일쯤 휴가를 준다해서 손해날것이 없는 것이다.
요즈음 서울의 피서객만 해도 하루 5만명 꼴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이 숫자 가운데 사무원이나 노무자들이 몇 %를 차지할까? 대부분은 부유한 유한 족들. 1년 내내 「바캉스」기분으로 세상을 놀아먹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그 증거로 KAL제주선의 「티켓」은 10일전에 매진되고 고급 「호텔」일수록 초만원이라는 것이다. 참된 「바캉스」의 의미는 일요일도 없이 주야의 격무로 시달리는 가난한 「샐러리·맨」이나 노무성들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바캉스」는 그림의 떡이다. 결국 높으신 사장 족들이나 경영자들의 이해를 촉구할 수밖에 없다. 『닭이 알을 많이 낳게 하려면 모이를 줘야 하고 사원들에게 일을 많이 시키려면 「바캉스」를 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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