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주, 이혼 2년 만에 최초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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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 약간 마른 듯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하고 2년 동안 종무소식이었던 한성주. 활동을 쉬는 사이에 마음 다스리는 공부와 사람 공부를 하면서 살았다고 말한다. 12월 말에 하와이로 떠나는 그녀가 모처럼 털어놓은 지난 2년간의 생활, 그리고 인생 계획.

하와이대 이스트웨스트센터에 장학생으로 입학, 그곳의 문화 제대로 체험하고 돌아오고 싶다

공백이 제법 길었다. 반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한 이후로 꼬박 2년 동안 방송 활동을 중단해온 것이다. 뭐하고 살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모처럼 학생 신분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다고 대답한다. 대학원(고려대 정책대학원) 졸업 시험도 치르고 논문 준비도 했다고. 내년 2월이면 석사 학위를 받는다.

“한창 논문 마무리하고 있어요.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요. 스트레스로 감기 몸살도 앓고 엊그제는 눈에 다래끼도 났지 뭐예요. 논문 주제는 ‘남북경협에 있어서 기업·국가 관계 분석’이에요. 진행 중인 사안이라 자료들이 별로 없어서 쉽지는 않았어요.”

12월 말에 전부터 별러왔던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하와이 대학 이스트웨스트센터(동서문화연구소)의 ‘아시아 퍼시픽 리더십 프로그램’ 과정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기간은 6개월. 정치외교학이나 국제관계 전공자 가운데에서 사회 실무 경험이 인정되는 사람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곳이다.

요즘에야 동아시아 관련 학문을 연구하는 학교들이 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양 사람들이 그쪽 분야를 공부하려면 반드시 거쳐갈 정도로 전통을 자랑하는 유수한 대학이었다.

“지난 여름에 미리 가서 둘러보고 왔어요. 교수님들과 선배님들이 하나같이 좋은 기회라고 말씀하세요. 정외과 학생들이나 정치인들이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거든요. 부모님 지원 받지 않고 내 힘으로 해보려고 일부러 학비와 체류비가 지원되는 학교를 골랐어요.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훌륭한 자양분이 되겠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을 내버려두었던 날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지금은 누가 이혼에 대해 묻지만 않는다면 의식하지 못하고 살 만큼 안정을 찾았다. 솔직히 초반에 얼마간은 자신을 멋대로 방치했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밤이면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점점 무기력해졌다.

인생을 계획대로 산다는 것은 우습지만 어쨌든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에 합격하고 미스코리아가 되고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하고….

하지만 결혼에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 누가 떠밀어서도 아니고 부모님이 두 손 들고 환영해서도 아니고,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결혼이었기에 뒷감당도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 나는 그게 실패했을 경우의 상황까지 예측을 하고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이에요. 나름대로 리스크 관리를 해온 거죠.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뭐든지 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도록 자립심을 강하게 길러주셨거든요. 다행히 진학이나 취업 등 인생의 중요한 관문들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근데 결혼은 내 의지만 가지고는 안 되겠더군요.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그쪽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요.”

부모님께 돌이키지 못할 불효를 저질렀다는 자책감도 그녀를 괴롭혔다. 비실비실 허우적거리는 딸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심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지난 봄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가야산에 있는 ‘마음 수련원’을 다녀왔다. 공기 좋은 곳에 가서 마음공부나 하고 오라는 뜻이었다.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가야산으로 향했다. 해인사와 15분쯤 떨어진 가야산자락에 위치한 마음 수련원. 그곳의 교사가 자신을 독방으로 안내했다. 1주일 동안 수련할 공간이었다. 커다란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소담스런 시골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종교와 상관없어요.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싶은 사람이면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죠. 마음이 나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니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쉽게 말해서 마음(자신)을 버리고 죽이는 수련이에요. 시키는 대로 열심히 수련에 집중을 했어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용서 못할 것도 없고, 내가 잘못했다 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할 것도 없더군요. 속이 확 뚫리는 느낌이었어요.”

마음을 비우고 죽이는 수련으로 해답 찾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마음을 죽이고 났더니 그간에 묵혀두었던 엔진이 서서히 작동되는 기미가 보였다. 유학문제도 순조롭게 풀렸고 8월에는 산림청 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산림청 일은 요사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등 공신이다. 재취업 교육을 받고 있는 실업자들이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든 수공 제품을 전시하는 행사, 구미에서 있었던 산림청 전직원 단합대회, ‘아름다운 숲 가꾸기’ 시상식과 제막제 등에 참여했다고.

“5월 말쯤에 산림청에서 연락이 왔어요. 한성주씨가 홍보사절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구요. 나는 얼굴마담은 싫고 이왕에 할 거면 정말 산림청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어요.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나를 선택했냐, 그런 것은 물어보지 않았어요. 나를 필요로 하면 뭘 할 수 있을까 역량을 따져야지 낙점된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궁금하게 여길 이유가 없잖아요.”

사는 것을 즐겁게 해준 공신이 또 하나 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낯선 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사람공부를 하는 중이다. 어떻게 살아야 진정으로 행복해질까 고민하던 차에 용기를 내고 TV나 책에서 봤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인생의 좌표를 다시 잡으려니까 혼란스러웠어요.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무슨 일을 하면 제일 잘할 수 있을지, 뭘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같은 아주 근본적인 고민이었죠. 학교 사람들한테도 조언을 들었지만 한계가 있더라구요. 어차피 내가 나중에 몸담을 터전은 학교 밖이잖아요. 그래서 바깥으로 눈을 돌렸어요. 평소에 저 사람들은 어떻게 했길래 저렇게 멋있게 살까 궁금했던 사람들을 한 사람씩 찾아갔죠. 30분만 달라고 했어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얻는 즐거움, 행복과 성공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생긴다

고맙게도 거절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치부를 깡그리 드러내고 조언을 구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약속한 30분이 지나고 1시간 2시간이 흘렀다. 자신들도 똑같은 고민을 했고 성공하기까지 치러야 했던 고통이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토로하더란다. 기대 이상의 소득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진심을 터놓고 대화하는 기쁨을 알았고 뿌옇던 시야도 트였다.

“성공을 재는 사회적인 잣대보다 자기 만족, 자기 눈높이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끊임없이 채워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그분들의 공통점이었죠. 요새 정말 사람 만나는 재미로 살아요. 그분들과의 만남은 물론이고 친구들이나 가까운 선배들과 만날 때도 너무너무 즐거운 거예요. 예전에는 꼭 무슨 용무가 있어야 사람을 만났는데 이제는 아무 일 없이 수다떠는 자리에서도 배울 게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와이에서 돌아오는 내년 여름쯤에는 방송 복귀도 준비하려고 한다. 이제 겨우 스물여덟인 그녀에게는 사랑도 빼놓지 못할 인생의 테마. 가진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고 다 받아도 미안하지 않은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일과 사랑 모두, 아팠던 만큼 야무지게 해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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