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 그리고 사랑? '센터 오브 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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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 같은 영화에 대해서 상반된 의견이 있을때다. 똑같은 영화를 보고나서 괜찮은 영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본 사람에 따라서 의견이 달라지는 영화는, 어딘가 독특한 개성이 있기 마련이다. '센터 오브 월드'도 그런 영화라고 생각한다. 국내의 영화수입사측에선 '하드코어 러브스토리'라는 다소 과격한 홍보문구를 집어넣었다. 절반 정도는 맞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센터 오브 월드'가 기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약간은 과격하고 야해보이는) 영화를 만든 이가 의외의 인물이기 때문. '조이럭 클럽'이나 '스모크'를 만든 웨인 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웨인 왕 감독은 주로 할리우드 가족드라마의 전형을 반복하는 작업을 해왔다. 근작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수잔 서랜든과 나탈리 포트만을 모녀로 등장시킨, 잔잔한 여성드라마이기도 했다. 요컨대 웨인 왕 감독은 소설가 폴 오스터와의 협동작업, 중국계 미국인들 삶을 영화로 옮기는 등 주류영화계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위치를 다져오던 연출자였다.

그런데 '센터 오브 월드'는 좀 색다르다. 영화엔 리처드라는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리처드는 인터넷을 이용해 백만장자가 된 행운아다. 그런데 그가 플로렌스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모험을 시작한다. 스트리퍼로 일하는 플로렌스는 리처드와 일종의 계약을 맺는다. 섹스없이, 오로지 쇼를 보는 것만으로 며칠 동안 둘이 함께 지내기로 한 것. 처음에 둘은 장난처럼 시간을 보내지만 차츰 리처드가 플로렌스에게 애정을 갖게 되면서 관계는 어색해진다.

'센터 오브 월드'는 디지털 영화다. 디지털 카메라로 모든 장면을 촬영한 거다. 아마도 영화가 선정적인 기운을 품게 된 것엔 이점이 적지 않은 이유가 됐을 법하다. 웨인 왕 감독은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선 즉흥적인 연기와 연출이 가능하다. 은밀한 장면도 가까이서 촬영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배우들 행동을 훔쳐본다는 느낌을 받을거다. 그래서 불편할지도 모르지만"이라고 말한다.

'센터 오브 월드'는 얼핏 '레드슈 다이어리' 류의 소프트 포르노영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혐의는 충분하다. 배우들 연기는 선정적이고, 내용 역시 스트립걸과 인터넷 벼락부자의 육체적 유희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의외로 금욕적인 구석이 있다. 영화에서 플로렌스는 남자에게 몇가지 제약을 둔다. 쇼를 볼수는 있으되, 키스와 섹스는 절대 안된다는 것. 게다가 여성은 자신이 일하는 시간을 밤10시에서 새벽2시까지 못박는다. 이 시간에만 리처드와 그녀는 개인적이고 계약에 얽힌 '관계'를 갖게되는 거다. 물론, 남자는 플로렌스를 차츰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원한다. 그럼에도 두사람을 맺어주는 건, 낭만적인 감정이 아니라 종이다발에 불과한 '돈'이다.

어느 해외 언론에선 영화에 대해 "인터넷 세대를 위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다"라는 평을 실었다. 과장된 평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일정 정도 공감가는 부분도 있다. '센터 오브 월드'는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지향적 인물을 비춰보인다. 이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으며 외부세계완 선택적으로 교류할 뿐이다. 섹스도 철저한 계약관계로만 맺는다. 마치 두사람의 가능한 행동, 불가능한 행동을 하나하나 명시한 리처드와 플로렌스처럼. 영화에서 그들은 "세상의 중심"을 놓고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린다. 한사람은 컴퓨터, 다른 사람은 여성의 자궁으로 말이다.

'센터 오브 월드'는 매춘을 다룬 단순한 영화는 아니다. 돈과 권력,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룬 영화다. 디지털로 찍었고, 배우들 연기가 다소 조악한 면이 있지만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만한 구석이 있다. 왜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마저 프로그래밍하고 통제해야만 하는가. 또한 동시대의 모든 관계는 '돈'을 중심으로 생겨나게 되었을까? 영화엔 한번쯤 생각을 요구하는, 가볍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원제 : Center of the World, The
출시일 : 2002/01/03
출시사 : 새롬
장르 : 드라마·에로
감독 : 웨인 왕
주연 : 피터 사스가르드, 몰리 파커, 칼라 구기노
러닝타임 : 86분
등급 : 18세
제작년도 : 2001
제작국가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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