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의 공식을 찾는다, 아니다 그런 공식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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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泰山을 이루었더니 어머니가 보시고는 저, 지저분한 山 좀 버려라, 하신다 할 수 없이 泰山을 쓰레기통 속에 버리고/ 피곤해서 잔다’

함성호씨의 세 번째 시집 『너무 아름다운 병』(문학과지성사) 중 〈일곱째 날〉 전문이다. 태산을 쓰레기통에 버리다니, 고생 좀 했겠는걸, 싶다. 엄청난 스케일의 수치로 구라를 쳤던 첫 번째 시집 『56억 7천만 년의 고독』 못지 않다.

시인이자 건축가이며 만화 비평에도 그 촉수를 뻗치고 있는 함성호씨의 세 번째 시집 『너무 아름다운 병』에는 온갖 이질적인 문화와 사물들이 함성호씨 특유의 능청스런 말투에 꿰어 있다.

시인은 지하철 플랫폼에서 눈이 내리는 속초까지, 세상의 지평선 너머 저쪽에 있는 사막까지 순례를 떠난다. 시집 한 권이 가상의 지도와 같고 시인은 ‘금지된 지식’을 찾기 위해 세계를 떠돈다.

낙타를 타고 대화역 러브호텔 골목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꽃의 흰 이마를 달리기도 한다. 시인의 순례는 ‘나는 왜 이곳에 있을까?’와 ‘누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세계의 끝을 만난 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함성호씨의 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줄기는 영원히 꽃에 이르지 못하고/ 우주의 끝을 본 자는/ 스스로에게 이 꽃을 바치게 될 것이다”(<얼굴>)

신의 공식은 ‘없다’
그 순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주의 끝을 보았는지 묻고 싶었으나, 시인을 만나기로 마음먹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함성호씨의 경우엔 더하다. 시집 전체가 마치 지하비밀결사대의 선언문이나 암호문 같으니 입으로 그 의미를 묻고 대답하기란 어지간한 배짱으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만났으나 사진으로만 기록을 남기고 시에 관한 이야기는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것으로 대신했다.

Q. 함성호씨는 시를 쓰면서 건축가로도 활동중이십니다. 건축과 시는 어떤 점에서 서로 닮았습니까? 그리고 그 두 개는 어떤 방식으로 서로 간섭합니까?
닮지 않았습니다. 간섭 안 합니다.

Q. “자기 환멸의 뜨거움을 끝내 다른 사랑의 이름으로 간직하게”된다고 하셨고 자기 환멸은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한 듯 합니다. 〈침엽수림에서 흰 모래 해변까지〉에서는 “아무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고 쓰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환멸도 사랑이 될까요?
환멸은 사랑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폐허나 유적지와 같은 것일테지요. 신라 때의 거찰을 우리가 이제 ‘황룡사 址’라고 부르듯이, 그리고 여전히 그 폐허에서 ‘황룡사’란 이름을 연상할 수 있듯이 사랑도 그 추억 속에서 굳게 남아있다면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환멸은 사랑의 유적지 같은 거겠지요. 폐허에 가보면 이상한 바람이 붑니다. 물리적인 바람이 아니라 먼 시간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지요. 환멸의 이름에서도 그런 바람은 불어옵니다.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생각하면 또 지겹고, 지겨운 것들 말이지요.

Q. 시집 전체는 마치 세계지도 같고 시인은 그 지도 위를 순례하는 순례자 같습니다. 함성호씨는 여전히 ‘금지된 지식’을 찾아다니십니까?
나는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할 때 썼던 신의 공식을 엿보고 싶은 자입니다. 나의 순례는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모순을 갖습니다. 즉, 하나는 “나는 신의 공식을 찾고자 한다”라는 명제에 있고, 다른 하나는 “그런 공식은 없다”라는 실증에 있습니다. 없는 공식을 찾는 물리학자가 학자일 수 있을까요? 또 존재하지 않는 성지를 찾아 길을 나선 순례자가 순례자일 수 있을까요? 나는 분명 지금은 ‘세계를 설명 할 수 있는 공식은 없다’라는 사실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끝없이 내 실험값들을 부정하면서 여러 가지 다른 실험의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런 모든 실험들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없다'라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나는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찾아다닌 ‘신의 공식=없다’ 라는 등식을요. 즉 ‘없다’야말로 신의 공식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나는 이 명확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obscurum per obscurius, 미친 짓이지요.

Q 요즘 함성호씨를 가장 도발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나를 도발시키고 있는 것은 한 가지, 글쓰기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입니다. 나는 글쓰기에 의해 도발적으로 됩니다.

Q. “하이브리드한 세계. 나는 이것을 탐구했다. 그래서 때로는 내 시가 세계보다 더 하이브리드했다”는 시구는 함성호씨의 세계에 대한 절묘한 고백인 듯 합니다. 시가 세계보다 더 하이브리드하게 되면 세계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까?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안 생깁니다. 점점 더 혼란스럽죠. 그 혼돈 앞에서 나는 문학의 경계를 봅니다.

Q. 앞으로 어떤 책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동안 틈틈이 써왔던 만화비평집이 『마음산책』출판사에서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학과지성사』에서 건축비평집이 나올듯한데 그건 아직 시간이 더 있어야 될 것 같구요. 또 다른 건축비평집이 건축전문 출판사에서 진행중인데 벌써 2년째나 끌고 있습니다.

Q. 제가 빼먹은 질문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하고 답변마저 해 주시겠습니까.
밥 먹었습니까? 예.
(김중혁/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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