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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vs 자영업자 … 동네상권 갈등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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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동반성장위원회가 5일 제과점업과 음식점업 등 16개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동네빵집 주변 500m 안에 낼 수 없도록 하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외식업체의 신규 확장을 사실상 금지시키는 내용이다. <본지 2월 5일자 1, 6면> 하지만 골목상권과 중소기업 보호라는 명분에만 매달리다 보니 대·중소기업 간 상생이 아닌 자영업자와 자영업자 간 갈등의 골만 더 깊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이날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제21차 동반성장위원회를 열고 메밀가루 등 2개 제조업종과 제과점·음식점업 등 14개 서비스업종에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사업 진출이나 확장 자제를 권고했다. 동반위 유장희 위원장은 “특히 생계형 서비스업의 중기 적합업종 지정은 무너져 가는 골목상권을 지키고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반위의 결정에 따라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제과업·외식업은 대기업의 신규 진입과 사업 확장이 사실상 금지됐다.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같은 프랜차이즈 빵집은 500m 거리 제한과 함께 전체 가맹점 수의 2% 안에서만 새로운 가맹점을 모집할 수 있게 됐다. 외식사업에서는 CJ푸드빌이나 롯데리아 같은 대기업 계열은 물론 총매출 200억원·상시근로자 200명이 넘는 놀부나 새마을식당·본죽 같은 중견업체도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또 대기업들은 외식업 시장에 새롭게 진출할 수 없고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확장할 수도 없다.

다만 대형쇼핑몰이나 역세권, 신도시 등에서만 음식점업동반성장협의회의 승인을 받아 신규 출점할 수 있다. 동반성장위는 피자헛이나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같은 외국계 외식업체에도 똑같이 추가 진입과 확장 자제를 권고할 방침이다. 유장희 위원장은 “대기업들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2016년부터는 중기청에 강제사업조정을 신청할 방침”이라며 “대·중소기업 양측 모두 결과를 수용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동반위의 결정이 나오자 프랜차이즈 빵집이나 외식업체의 가맹점주들이 “우리도 자영업자인데 동반위 결정은 다 같이 죽자는 물귀신 작전”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파리바게뜨 등의 가맹점주들은 “거리 제한 등으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면 점포의 재산가치 역시 떨어진다”며 “은퇴자금 등을 털어 투자한 개인사업자인데 정부가 나서 죽이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죽이나 놀부, 새마을 식당 같은 외식업체 가맹점주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회현동의 본죽 가맹점주는 “1억5000만원 정도를 투자해 10평 남짓한 가게를 운영 중”이라며 “우리 같은 사람이 왜 대기업이 받는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프랜차이즈는 업태의 특성상 경기에 따라 자연감소분이 있다”며 “신규 개설이 제한되면 그만큼 점포 수가 줄어 본부의 사세가 위축된다”며 “그러면 본부가 광고나 마케팅을 줄일 테고 결국 가맹점들만 손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동반위의 이번 결정이 신규 창업자의 초기비용만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프랜차이즈사업이 거리와 신규 개설 제한을 받게 되면 새 점포 출점이 쉽지 않아 창업 기회가 줄고 기존 점포의 권리금만 올라간다는 것이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 관계자는 “벌써 괜찮은 상권에선 점포를 내놓는 점주들이 권리금을 턱없이 높여 부른다”며 “500m 안에는 다른 가게를 낼 수 없으니 새로 창업하려면 비싼 권리금을 주고 그 점포(간판)를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반위 결정에 대기업들은 일단 몸을 낮추고 있지만 물밑에선 불만이 끓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한식을 세계화하라면서 정책은 거꾸로 쓰고 있다”며 “국내에서 외식사업 경험을 못 쌓는데 갑자기 세계시장에 나간들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장정훈·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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