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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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네 장년시대에는 「철창」이란 말이 아주 재미없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감옥(지금의 교도소, 몇 해전의 형무소)의 별명이니 그럴 수 밖에. 그리하여 철창생활이라면 으례 수인의 몸을 의미하였다. 그때는 일반 주택에서는 도저히 철창을 구경할 수가 없었고, 오직 감옥이나 유치장에만 철창의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던 것이 이 근래에 와서는 잘 짓는 개인의 주택일수록 철창을 만들고 그뿐 아니라 담 꼭대기에도 철책이나 철조망을 견실하게 설치해 놓아서 보기만 하여도 삼엄한 전율감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반드시 어떠한 이유와 원인이 없지 않을 것이다. 어쨋든, 전일의 철창생활은 이승(차생)의 지옥살이로서 따분하기가 짝이 없었는데 요사이의 철창생활은 여간 호화판이 아니다.
그동안 세상은 이렇게 변하였다. 철창 뿐 아니라 세상만사에 대한 가치관이 백80도 바뀌고 말았다. 정직한 사람은 바보요, 부정·협잡·밀수·탈세 등을 감행하는 이들이 대성공을 구가하게 되니, 선과 악, 시와 비, 정과 사가 정반대로 뒤집히고 말았다. 이것을 가치관의 도착이라고나 할까.
예전에는 살인사건이란 매우 드물어서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기 같은 일이요, 일단 살인사건이 생기게되면 온 세상이 술렁슬렁거리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요사이에 와서는 사람의 가치가 여지없이 폭낙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하나 죽어버리는 것이 파리 목숨만도 못한 느낌이 들게 된다. 그리고 그 숱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것이 겅성드뭇하다.
사람이 비명에 죽는다는 것은 인간만사 중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건만, 요새 사람들은 이런 살인사건을 그다지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
가령 교통사고로 몇명 내지 몇십명 사망자가 생겼다면,
『응, 오늘 또 으례 생길 일이 생겼구나.』하는 듯이 무심한 것 갈다. 그렇지 않다면 교통사고의 최대요인이 되는 노후한 차량의 정비에 좀 더 손을 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민중의 지팡이가 민중의 몽둥이로 바뀌는가하면, 경찰이 소매치기와 부동이 되는 일도 백일하에 벌어지고 보니, 참으로 기가 차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판에 종래의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이 세상에 부지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발로 하늘을 디디고, 머리를 땅으로 두지 않고서는, 아무래도 살아 나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이희승<대전 대학 대학원장·서울대명예교수·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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