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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세계 반도체 '3강' 재편 회오리 속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제휴에 대해 채권단과 증시는 일제히 반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달리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는 마이크론.하이닉스 연합군과 기술적으로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며 애써 태연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반도체 감산으로 인해 가격으로 오르는 반사적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기술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삼성전자=삼성전자는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제휴로 하이닉스의 반도체 설비 및 기술이 중국에 넘어가는 일이 취소되거나 연기돼 중국으로 기술이 빠져 나가는 것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두 회사의 통합으로 삼성전자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의 시장점유율을 지난해 21%에서 올해 30%로 끌어올릴 만큼 경쟁력을 지녔다"고 말했다.반도체는 제품 개발력과 공정 운영능력이 가장 중요한데 삼성전자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과 원가 절감 능력을 갖췄다는 주장이다.

최근 세계 최초로 3백㎜ 웨이퍼(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원판)를 양산(量産)하기 시작했고 차세대 5백12메가D램 제품을 가장 먼저 내놓는 등 경쟁업체를 적어도 6개월 이상 기술력에서 따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값은 기술발전과 함께 계속 하락하는 추세여서 규모의 경제와 원가절감을 위해 대형 업체간 짝짓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진행 중인 일본 도시바와 독일 인피니온의 결합과 달리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통합할 경우 삼성전자를 웃도는 규모를 지님으로써 자칫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구가해온 국제시장에서의 가격 선도력이 약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 풀어야 할 과제=전문가들은 지분 맞교환 등 실질적인 제휴관계에 이르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제휴 발표에 이르기까지 협의 기간이 짧았다는 점을 들어 이번 발표가 시장 무마용 제스처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질적인 지분 맞교환은 마이크론의 주주총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하이닉스의 재무상태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시장의 수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양측의 절박한 사정때문에 서로 제휴가 추진됐고, 따라서 출하량 조절과 공동연구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이번 제휴가 당장 반도체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는 상당히 기여하리란 분석이다.

◇ 시장 반응=증시 분석가들은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제휴가 세계 반도체 업계를 경쟁 상태로 만들면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거인인 삼성전자에 맞설 수 있는 확실한 2위 그룹을 만들 것이란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분석가들은 특히 이번 제휴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공급 과잉으로 인한 '수요자(바이어)시장'에서 공급 축소에 따른 '공급자(셀러)시장'으로 바뀌면서 반도체 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대우증권 전병서 부장은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제휴가 이뤄지면 채권단의 부담도 덜게 된다"며 "채권단의 지원을 등에 업은 하이닉스와 재무구조가 좋은 마이크론이 정면으로 맞붙었다면 둘 다 6개월을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SK증권 전우종 연구위원도 "두 회사의 합병으로 출하량 조절이 이뤄질 것"이라며 "앞으로 반도체 가격이 50% 이상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메리츠증권 최석포 연구위원은 "두 회사의 제휴가 어떤 강도로 이뤄질지에 따라 앞으로 반도체 시장의 반응이 달라질 것"이라며 "당장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기간의 반도체 수요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지켜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권단 반응

하이닉스 반도체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이연수 부행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어떤 방식이든 채권단을 포함한 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면 좋다"고 말했다. 李부행장은 "물꼬가 트였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며 "합병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분 맞교환만으론 신규 투자결정이나 생산라인 처분 등을 결정하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지 않으냐는 지적에 대해 "가능성만 열어놓은 것일 뿐"이라며 "할 말이 없다"고 말문을 닫았다.

또 다른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의 고위 관계자(익명 요구)는 "채권단으로선 회수만 잘 할 수 있는 방안을 택할 뿐"이라며 "하이닉스 반도체를 오래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합쳐지는 것은 채권단에도 큰 도움을 주는 일이며, 단순히 점유율 세계 1위라는 의미를 넘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합쳐진다고 할 때 어떤 이름을 내거느냐는 명분에 불과할 뿐 실제로 하이닉스의 1만5천여 종업원과 15만 하청업체 직원에게 도움을 주는 방안이 무엇이고, 채권단의 채권 회수에 도움을 주는 방안이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승일.최현철 기자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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