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직원 "수입차 매장 갔더니…깜짝 놀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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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현대자동차 영업사원들이 최근 서울 청담동 까르띠에 메종 부티크를 방문해 명품 브랜드인 까르띠에의 접객 노하우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소속 우수 판매사원 20여 명은 지난달 초 국내 최고급 호텔 중 하나인 서울 광장동 W서울워커힐호텔에서 투숙해 스파를 비롯한 호텔 내 각종 편의시설을 체험했다. 호텔에 머무르는 동안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 헤어숍 등도 방문해 최상위 서비스를 경험했다. 물론 여기에 드는 비용은 모두 회사 측이 지불했다. 눈에 띄는 점은 우수 사원에 대한 포상 목적이 아니라 교육의 일부였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럭셔리 문화’ 배우기에 적극 나선다.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보폭을 넓혀 가는 수입차 브랜드에 맞서기 위해 최상위층 소비자들과 동일한 서비스를 경험하고, 이들의 눈높이를 이해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는 ‘하드웨어(자동차)’는 잘 만들지만 콘텐트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고급차 구매자들을 효과적으로 잡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임직원 교육을 위해 일부 명품 브랜드 최고경영자(CEO) 등을 서울 양재동 사옥으로 초대해 사원 대상 강의를 한 적은 있지만, 직접 직원들을 럭셔리 매장으로 보내 이를 체험하고 관련 교육을 받도록 한 것은 이례적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내수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국내 소비자를 더 이상 수입차에 빼앗기지 않는 게 올해 주요 경영목표 중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럭셔리 교육은 현대차그룹 정의선(43) 부회장이 주도했다. 정 부회장은 “고객에게 차를 팔려면 이들이 뭘 입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문해 왔다. 실제 경험을 추구하는 정 부회장의 생각에 따라 ‘럭셔리 문화’ 교육은 주입식이 아닌 철저히 체험형 교육 위주로 진행된다.

 W서울워커힐호텔 같은 초고가 호텔에 투숙하는 것은 물론 루이뷔통·까르띠에·에르메스 등 주요 명품 매장을 방문해 판매 노하우와 VVIP(극소수의 상위층) 고객들의 소비 패턴에 대한 브리핑을 받기도 한다. 교육 프로그램 중에는 경쟁자 격인 수입차 매장을 ‘미스터리 쇼퍼’로 방문해 직접 서비스를 평가하는 기회도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수입차 매장을 방문했더니 차에 대해 설명할 때 백화점 구두매장처럼 영업사원들이 무릎을 굽힌다든가, 매장 밖까지 배웅하는 섬세한 서비스에 놀랐다”며 “수입차 브랜드를 무조건 경쟁자로 여기고 시기할 게 아니라 그들의 DNA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정식으로 만드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중순부터는 럭셔리 문화를 배우는 것 못지않게 기아자동차 영업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현대차 측 영업사원들의 판매 노하우 전수 교육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K9을 비롯해 기아차가 내놓은 럭셔리 세단들의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배경에는 기아차 영업사원들이 고급 차를 팔아본 경험이 적다는 내부 판단이 있어서다. 실제 기아차의 경우 그간 K5를 비롯한 중형차 이하의 차급이 주력 상품으로 판매돼 왔다. 이런 최상위층 대상 마케팅 경험의 부재는 실적과 직결된다.

 기아차가 지난해 5000억원이 넘는 개발비를 들여 출시한 K9의 경우 지난달 판매 대수는 500대에 그쳤다.

 올 들어 차급에 따라 최대 291만원까지 차 값을 낮췄음에도 당초 월 판매목표치의 3분의 1에 그치는 실적이다. 이런 약점들을 만회하기 위해 현대차그룹 측은 영업사원 중 그랜저급 이상 판매 우수 사원들을 골라 이들로 하여금 기아차에 판매 노하우를 전수하도록 하고 있다.

 단골 마케팅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영업용 차량(개인택시) 반복 구매자를 위한 혜택을 내놓은 것이나 제네시스·에쿠스 보유자 중 연이어 현대차를 구입한 이에게 최대 3%까지 차량 할인쿠폰 등을 제공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의 대표 오토바이 제조기업인 할리 데이비슨이 경영위기에서 벗어난 원동력에는 결국 이를 아끼는 단골 소비자의 힘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앞으론 확실히 국내 소비자를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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