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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리포트] "쪽방사람들이 굶어 죽어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주동안 사이버리포트 테마취재팀은 '0.5평 쪽방사람들'에 대한 특별취재에 나서 그들의 삶과 현장을 조명했다.

이 시점에서 취재진은 쪽방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 시민단체, 종교단체, 학계 등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쪽방사람들을 가까이서 돕고 있는 그들이 말하는 쪽방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 '설탕물'로 끼니를 때우다 죽어간 구씨

쪽방현장을 취재하던 취재진은 쪽방사람들과 노숙자들이 죽어간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듯했다.

무려 16년동안 쪽방에서 살다가 얼마전 세상은 떠난 사람은 구 모씨. 그는 0.5평 쪽방에 살면서 늘 한숨을 토하곤 했지만 한번뿐인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한다. 그러던 얼마전 취로 현장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갑자기 쓰러진 구씨는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결국 한 많은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의 병명은 '영양실조'였다. 충격적인 것은 그가 먹을 것이 없어 거의 매일 설탕물을 마시며 끼니를 때웠다는 사실이었다. 취로사업 수입으로 겨우 방세를 지불하고 나면 끼니거리를 마련할 수 없어 겨우 몇 푼 남은 돈으로 라면으로 몇 끼니를 버티고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설탕물에 의지한 채 목숨을 연명했던 것이다.

이런 사례는 구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쪽방사람들은 숨막히는 좁은 공간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가고 있다. 영양실조로 병들어 고통당하며 죽어간다. 그러나 그들을 찾아와 뼈마디 굵어진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외로움속에서 고달픈 인생을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

쪽방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내 주요 쪽방촌이 있는 종로구, 중구, 용산구, 영등포구에는 쪽방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 센터들은 무료급식, 취업알선, 생필품 지원, 주거환경 개선, 의료지원, 장례비 지원, 의료제공, 실태조사, 주민등록 복원 등 쪽방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취재진은 쪽방 사람들이 가장 많다는 서울 중구의 쪽방상담센터를 찾았다.

- "쪽방 사람들을 취재한다고요? 우리 기사 좀 내주세요"

지난 11월 중순 취재진이 쪽방상담센터를 찾던 날, 보건복지부 방문 계획도 미루고 시간을 낸 김흥용 목사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취재진에게 대뜸 "기사 좀 내달라"고 주문했다.

지금 우리나라엔 쌀이 남아 돈다는데 당장 쪽방사람들은 쌀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판이니 '쪽방에 쌀 좀 보내달라'는 기사를 달라는 것이 김 목사의 부탁이었다.

"한 신문사에서 '우리 쌀 사기' 운동을 하더군요. 그거 수많은 기관이나 단체가 쌀을 구입해서는 각지에 보내주는 운동이에요. 그래서 그 일부는 당연히 이곳으로 보내질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10월 말이 되었는데 전혀 기별이 없는 거에요. 다급한 김에 쌀 모아진 것 좀 보내달라고 그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사는 쌀을 사 준 사람들을 집계하고 지면에 싣는 것만 할뿐 쌀은 없다는 거에요."

'우리 쌀 사기'운동에 기대가 많았던지 김 목사의 이야기는 매우 아쉬운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신문사에 쌀을 보냈다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해봤습니다. '우리도 상황이 많이 어려우니 우리에게 보내달라'고요.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이미 다 보냈기 때문에 더 이상 보내줄 수 없다'고 하데요. 그래서 '어디에다 보냈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아직 보낸 것은 아니고 거기에는 돈만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루 한끼가 전부이거나 그것도 없으면 설탕물로 허기를 채우는 쪽방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라며 다급해진 김 목사는 명동이나 서울역에 현수막을 설치하고 쌀 모금 운동이라도 벌이려 했으나 법적으로 모금운동은 안 된다는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모금운동 벌이면 3년 징역형이나 3천만원 벌금이래요. 나는 돈이 없으니까 징역 살겠죠. 징역 살더라도 쌀 모금 운동을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게 잘못이면 하느님이 심판해 주시겠죠."

김 목사는 모금운동이 불법이지만 기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쌀을 기탁하는 운동에 동참에 달라고 덧붙였다.

- 30년 모은 사재 털어 설립한 '나사로의 집'

김흥용 목사가 운영하는 쪽방상담센터 '나사로의 집'은 그가 지난 95년, 30여년간 근무했던 한국은행을 퇴직하면서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걸인들을 위한 무료 목욕시설을 만들면서 그들에게 이발과 목욕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호적을 만들거나 쪽방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다가 작년 3월 정부로부터 '쪽방 상담소' 인가를 받아 정식 개관했다.

취재진이 쪽방상담센터를 찾던 날, 나사로의 집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난방장치가 없어 운영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대변해 주었다.

"서울시에서 지원을 해주기는 하는데 운영비 정도에 불과합니다. 월세 등은 다 따로 내야하죠. 많은 부분을 헌금 등으로 도움 받습니다. 겨울을 나라고 옷 등을 직접 보내주시는 분도 있고요, 자원봉사자들이 무료 진료를 오기도 하고 최근에는 '건강치아를 위한 치과 의사회'에서 쪽방 사람들 14명에게 무료 틀니를 해줬어요. 그러한 관심들이 많은 도움되고 있습니다. "

김 목사는 자신도 걸인이었던 시절, 돈이 있어도 목욕과 이발을 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김 목사의 아내는 오랫동안 과일장사를 했는데 몸을 돌보지 않고 일을 하는 바람에 양손이 모두 구부러져 최근 손가락을 펴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그나마 수술비가 모자라 현재로서는 한쪽 손만 수술을 받은 상태다.

"제 아내가 과일장사를 해서 번 돈까지도 이곳 운영비로 들어갑니다. 한달간 번 돈이면 나머지 손도 수술이 가능하지만 그럴 형편이 못됩니다."

-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요"

서울역 맞은 편과 남대문 일대에는 900여개가 넘는 쪽방이 밀집해 있다. 화려한 도심속 그늘진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곳에서 수 많은 쪽방사람들이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 받거나 일을 해서 한달에 20~30 만원씩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달 월세 20만원 가량을 내고 나면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남지 않아 굶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곤 합니다. 그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려서 앞을 못보게 된 노인분들도 있어요. 이곳은 모든 것이 부족해요."

그래서 쪽방상담센터에서는 쪽방사람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나사로의 집 (http://www.nasaro.org) 전화 02-778-1290

"처음엔 음식을 보내달라고 이곳저곳 부탁하고 다녔었는데 어느 곳에서도 연락을 주지 않더라구요. 다행히 힐튼호텔에서 20인분의 뷔페음식을 매일 보내주기로 해 영양가 있는 고급음식을 제공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근처 웨딩 코리아에서도 김치, 홍어회, 각종 부침 등을 보내주고 있어요. 정말 고마울 따름입니다.

(여기서 취재진은 무료음식을 나눠주는 푸드뱅크 얘기를 꺼냈다.) 쪽방 사람들은 고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푸드뱅크는 고정적이지가 못해요. 작은 도움을 주더라도 고정적으로 보내줄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것이죠."

쪽방사람들은 대부분 영양실조에 허덕이다 질병까지 얻게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는 것이 김 목사의 주장이다. 난방조차 안되는 냉골에서 병든 몸으로 추위에 떨다가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름에는 숨막히는 찜통더위를 이기지 못해 운명을 달리하기도 한단다. 누구 한 사람 돌봐주거나 걱정해주는 이 없이 어느날 아침 이슬처럼 덧없이 생을 마감하는 쪽방사람들의 생명은 그야말로 인생무상을 느끼게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요. 쪽방사람이 죽으면 예전에는 무연고자로 구청에서 처리했는데, 가는 사람 제대로 보내주고 싶어 구청에 건의해 저희가 위임을 받았습니다. 쪽방상담센터에서 쪽방사람들과 함께 장례도 지원해 주고 집례도 하는 거죠. 무연고자로 처리되지 않고 장례를 치룰 수 있다는 것에 사람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경제한파속에서도 어려움을 나누었던 IMF시기는 지나갔다고들 한다. 그러나 취재진이 만난 쪽방사람들의 힘겨운 삶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 이들에게 있어 한 끼니는 보통사람들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이들의 한 끼니는 바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겨울의 길목으로 성큼 다가선 지금, 연말 분위기가 감도는 서울의 한 복판. 그곳에 하루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 배를 움켜쥔 채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몸을 누이는 사람들이 있다.

사이버리포터 테마취재팀 <bluejim@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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