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순 총장 '내 안의 두 세계'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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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내가 태어난 한국이라는 나라와, 내가 공부했고 살았으며 좋은 가정을 만든 미국의 남부라는 두 세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지난 30여년간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다 최근 귀국한 인류학자 김중순(64) 한국디지털대학교 총장은 "한국과 미국이란 두 세계의 장단점을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세계를 택하고 다른 하나를 무시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서양과 동양을 현실적 삶과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넘나들 수밖에 없었던 김총장이 '내 안의 두 세계'(일신사 펴냄)란 신간 속에 지난 30여년간의 기억을 풀어 놓았다.

그에게 두 세계의 갈등과 공존은 학문적 주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류학이 본디 20세기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발전시킨 학문 분야이건만 아시아 약소국 출신의 학자가 미국 현지를 인류학적으로 탐사했다는 점이 우선 흥미를 더한다.

그는 미국인들도 꺼리는 인디언 보호구역, 산간 오지의 벌채 노동자, 그리고 일본계 기업에서 일하는 일본인 상사와 미국인 노동자 사회 등 이색적인 소재로 미국 사회의 저변을 넘나들었다. 아울러 한국을 방문해 한국 기업문화와 이산가족 문제 등을 탐구하기도 했다.

줄여서 말하면 그의 인류학적 탐구는 두 세계의 넘나들기 혹은 가로지르기였으며 나아가 그 과정에서의 정체성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힘들게 살았지만 전통이 남아 있던 한국 사회에 대한 추억과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룩한 고국의 현재를 비교하면서 때론 국외자의 입장에 서기도 한다.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복잡하게 얽힌 고국에서의 경험을 안고 자본주의의 첨단인 미국 사회를 조사할 때는 또 다른 국외자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두 세계를 모두 포용하면서 동시에 어느 한 쪽에도 안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내가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라고 묻곤 했다고 한다.

한 세계의 내부인이면서 동시에 외부인이 되기도 하고, 현지 인류학자이면서 외국 인류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귀착점은 '성찰적 인류학'(reflexive anthropology)이었다.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의 요체는 인간 사회에서 차별이 벌어지는 현상과 원인에 대한 것으로 모아진다.

그가 벌목공을 연구하던 시절의 한 일화. 벌목공들에게 친밀감을 주기 위해 머리도 노동자처럼 짧게 깎고 옷도 허름하게 입었다. 그런데 그를 처음 본 백인 감독이 "넌 뭐야"라고 부르는 등 현지조사 첫날부터 전혀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다.

얼마 후 말끔하게 차려입고 다시 방문했을 때 그를 다시 본 그 백인 감독은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다"고 깍듯이 대접했다고 한다.

백인 동료들과 함께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어갔을 때 이야기. 인디언들은 백인들을 전부 내쫓고 자신만 들어오게 했다. 그를 한가운데 세워놓고 질문 공세를 벌였다.

어디서 왔느냐, 주로 뭘 먹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 너희 고향 노래를 불러봐라 등등. 인디언들의 그에 대한 인류학적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인디언 청중을 상대로 한국 노래를 구성지게 한 곡 뽑아야 했다. 이때 그는 "인간은 누구나 다 남녀노소와 인종을 불문하고 인류학자의 소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낯선 이를 대하는 최초의 반응은 호기심과 적대감이라고 한다. 낯선 자들의 수가 불어나 집단화되면 적대감은 차별과 대립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나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또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끈질긴 노력이 이어진다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적대감은 마침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얻은 그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생김새와 사는 모습만 약간 다를 뿐 결국은 똑같은 인간들이다… 대부분의 적대감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김총장은 연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65년 16달러만 손에 쥔 채 미국에 유학, 72년 조지아대학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30여년을 테네시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내 안의 두 세계'는 테네시대학 출판부에서 '한 인류학자, 두 세계 : 30년간 북미와 아시아에서 행한 성찰적 현지조사'(One Anthropologist,Two Worlds:Three Decades of Reflexive Fieldwork in North America and Asia)라는 제목으로 2002년 7월 펴낸 책을 자신이 번역해 국내 출간한 것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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