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특정업무경비 현금 지급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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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힘 센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안주머니 쌈짓돈처럼 꺼내 썼던 특정업무경비 지출 요건이 대폭 강화된다. 현금 지급이 원천적으로 금지되고, 개인이 쓸 수 있는 한도는 30만원을 초과할 수 없게 된다. 일부 고위공직자가 마치 자신의 개인 돈을 쓰는 것처럼 특정업무경비로 축의금이나 경조금을 내 온 관행에도 제동이 걸린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특정업무경비의 남용을 막기 위한 조치다.

 기획재정부는 1일 이 같은 내용의 2013년 예산·기금 운용집행지침을 확정해 주요 정부부처는 물론 헌법재판소·경찰청·검찰청·국가정보원·국세청에 통보했다. 적용 대상 정부부처는 50개에 달한다. 이 방안은 이날부터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특정업무경비는 미리 지급하거나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지침은 정부구매카드 사용이 원칙이며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현금으로 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정부구매카드로 쓰면 지출 용도 파악이 가능해 지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경찰관이 장기간 잠복근무하거나 장기 출장에 나설 때처럼 용도가 명백한 경우라도 개인당 매달 30만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초과해 지급할 때는 별도 지출 요인이 있을 때만 허용된다. 이동흡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재직 시절 6년간 매달 300만~500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받아 지출했으나 대부분 증빙을 하지 못해 논란을 일으켰다.

 각 부처의 관리 책임도 강화된다. 장관·위원장·원장·청장 등 정부부처 기관장은 특정업무 경비 집행계획을 수립할 때 내부통제 강화 같은 투명한 방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각 부처는 특정경비를 지급할 때 공무원들이 급여와 혼동해 쌈짓돈처럼 쓰지 못하도록 개인보수 지급과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 일용직이나 사무보조원에게는 특정경비를 월정액으로 지급해서는 안 된다. 소액이나 영수증 첨부가 곤란해 증빙이 어려운 경우에도 지출내역을 기록하고 감독자가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특정업무경비는 수사·감사·예산·조사를 비롯한 특정업무수행에 소요되는 실비 지출에 쓰이는 돈으로, 올해 예산은 50개 기관에 총 6524억원이다.

 아울러 일반적인 대외 활동에 쓰이는 업무추진비 사용 규정도 강화된다. 올해 업무추진비는 2043억원 규모다. 기념식이나 공식행사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류 구매에 업무추진비를 쓰는 일을 삼가도록 했다. 재정부 박영각 예산기준과장은 “언론과 국회에서 문제가 제기된 데 따른 개선책”라고 말했다.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도 현금 사용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특수활동비는 주로 국가정보원이 안보 문제처럼 활동을 공개하기 어려운 분야에 지출된다. 올해 예산은 8500억원이다. 특수활동비는 내용을 알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묻지마 경비’로 불린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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