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에 걸리고 싶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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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면 종잡을 수 없는 세상까지 날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 조앤 K 롤링의 소설 '해리 포터'시리즈다.

작고 약한 고아 해리 포터가 친척의 천대를 벗어나 닿게 되는 마법의 성 호그와트는 신비와 환상이란 수식어로는 부족한 꿈 그 자체다.


미국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국내에 상륙한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각박한 세상에 꿈을 안겨준 원작의 엄청난 힘을 업고 할리우드의 황태자가 된 듯 으쓱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마에 번개 모양의 흉터를 지닌 안경 낀 소년 해리나 괴기스런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사냥터지기 해그리드가 '나 이렇게 생겼는데'라며 얼굴을 내미는 순간, 해리 포터 매니어들은 머리 속 밑그림이 현실로 펼쳐지는 쾌감에 안절부절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에선 '피터팬'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고전을 얻은 듯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물론 영화의 흥행도 그런 신드롬과 무관치 않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작품성이야 어떻든 마치 이벤트 상품으로 상당한 매력을 갖고 출발점에 서 있다. 정작 불우한 해리 포터의 출발과는 다른 태생적 우등생인 셈이다.

이 영화는 해리 포터 시리즈 1탄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이모부 가족에게 맡겨져 온갖 멸시를 받으며 계단 밑 벽장에서 불우한 삶을 살던 해리 포터가 어느날 자신이 마법사임을 알게 되고 호그와트라는 영국 최고의 마법학교에 입학한다.

그 곳에서 해리는 독약 제조법과 물건을 공중으로 띄우는 기술, 그리고 변신술을 배우며 신비한 모험을 경험한다. 그러던 중 마법학교 지하실에 마법 세계를 지켜주는 마법사의 돌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노리는 마왕과 대결한다.

이야기의 근간을 원작에 전적으로 기댄 이 영화의 승부처는 얼마나 사실감있게 문자를 영상으로 표현했느냐에 달려있다.

다행히 박진감 넘치는 퀴디치(마법사들이 즐기는 최고의 스포츠 게임) 경기가 책을 읽은 이로부터 '바로 저거였지'라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살아 있고, 편지를 전하는 부엉이의 날갯짓과 마법학교장 덤블도어 교수의 표정, 그리고 벽난로에서 부화하는 용 등은 상상력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영화 속 드라마의 흐름은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관성적이다. 상상을 매개로 고리를 이어가던 소설 속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배경을 옮기며 예측 가능한 이야기와 평범한 캐릭터들로 둔갑했다.

예컨대 롤링의 소설속 영웅들은 갈수록 그 품위가 더해가지만 영화 속에선 그냥 정형화된 영웅이란 느낌을 줄 뿐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와 함께 점차 잠재적 요소들이 힘을 얻어가던 독특한 방식은 단순히 에피소드별로 잘리고 만다.

특수효과를 많이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영화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특수효과 덩어리인 영화 '미이라'같은 느낌을 줘 아쉽고 권선징악이라는 도식적인 결말 탓에 반전은 꿈도 못 꾼다.

2시간32분이란 러닝타임은 어린이에게 부담이 될 듯하고 자녀의 손에 이끌린 어른이라 할지라도 마법 세계를 들여다보는 영화로는 길다. 다만 원작에 빠져든 경험이 있다면 소설의 내용을 영화가 어떤 식으로 그릴지를 상상하는 재미는 쏠쏠할 수도 있겠다.

'나홀로 집에''미세스 다웃파이어' 등으로 가족 관객을 매혹시킨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원작의 분위기는 살려냈지만 롤링의 마법 세계를 경이롭게 표현하지는 못했다. 대신 4만명의 경쟁을 물리치고 등극한 해리 역의 대니얼 래드클리프, 헤르미온느 역의 엠마 왓슨 등 아역 배우들을 보는 것은 흐뭇하다.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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