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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참된 사상은 현실 개척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헤겔에 있어서의 노동의 개념」이라는 저서를 발표하여 독일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철학자 임석진(35)박사가 지난 6월23일 귀국했다.
중후한 인상을 풍기는 그는 담담하게 귀국 소감을 말한다.
『아무 미련 없이 10년 동안 살던 독일을 떠나왔습니다. 이제 한국에서 보람있는 일을 해야겠소. 우리의 현실을 떠나서 참된 철학이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56년 서울문리대를 졸업,「하이델베르크」대학에 유학했다. 거기서 한 학기를 지내는 동안「헤겔」의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됐다고 한다. 그는「프랑크푸르트」대학의「아도르노」교수에게 가서 다시 5년 동안 연구를 계속했다. 「헤겔」변증법의 핵심인 정신활동에서 나타나는 창조적 노동의 의미를 밝히기 위하여 그는「헤겔」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을 전개했다.
「샤프」교수의 지도로 61년에 논문이 완성되어 대학으로부터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천 편이 넘는 「헤겔」연구서 가운데 처음으로「노동」의 문제를 다룬 이 논문은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63년에는 출판까지 되었다.
작년에 초판이 절판되자 금년 6월에 재판이 나왔다. 「쾰른」방송국이 30분간 이 책을 소개한 일도 있다. 독일 학문의 정통성을 존중하고 민족적 자긍심이 특별히 강한 독일인이 외국의 한 젊은 학자의 연구를 이렇듯 문제삼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 이 책이 들어왔을 때 박종홍박사(서울대학원장)는 그 학문적 가치를 중시하여 대학원의 강의에서 무제 삼았었다.
임 박사는 그의 연구가 올바른 길을 걸어왔다고 확신하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 어떻게 전개시킬 것인가에 있다고 말한다.
『독일에서는 더 얻을 것이 없었습니다. 외국에서 편안히 앉아 명상에 잠기고 책을 읽고 쓰고 해봐야 우리의 절박한 문제가 해결 될 수도 없을 거요.』우리의 현실을 개척하여 역사를 만드는 길을 여는 데에 참된 사상이 산다고 무겁게 말을 맺는다.
그는 오랫동안 구수한 막걸리를 못 마셨다고 하면서 빈대떡 집에 가서 한잔하자고 기자에게 권하는 것이었다.
독일「쾰른」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함께 귀국한 부인 홍성희 여사와의 사이에는 1녀가 있고 또 곧 아우를 보게되었다고―.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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