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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님 잘들어" 개콘, 이례적 행정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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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KBS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 코너 (2013년 1월) - 박근혜 당선인을 대상으로 한 정태호씨 “잘 들어” “하지마” 발언. 방통심의위에서 행정지도 의결.

딴사람은 몰라도 대통령에게 반말, 훈계조는 안 된다? 그것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박근혜 당선인을 소재로 삼은 코너로 방송통신심위위원회(방통심의위)의 행정지도 조치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23일 ‘용감한 녀석들’ 코너에서 개그맨 정태호가 당선인에게 보낸 말이 문제가 됐다.

 “이번에 대통령이 된 박근혜, 님 잘 들어.… 수많은 정책들 잘 지키길 바란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절대 하지 마라. 코미디. 코미디는 하지마. 우리가 할 게 없어. 왜 이렇게 웃겨. 국민들 웃기는 거 우리가 할 테니까.…” 등이다.

 ◆풍자와 품위 사이=방통심의위는 “아직 국정을 시작하지도 않은 대통령 당선인에게 훈계조로 발언한 것은 바람직한 정치풍자로 볼 수 없다” “대통령 당선인에게 반말을 사용한 것도 시청자에 대한 예의, 방송품위 유지 조항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 제작시 유의하라는 의견이다. 법정제재보다 수위가 낮은 행정지도다. 법적 구속력도 없다. 그러나 정치풍자 코미디에 대한 이례적인 조치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권위에 대한 해체는 정치풍자의 기본인데 반말, 훈계조라고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코미디에서는 할아버지에게 반말하는 것도 웃음코드로 받아들여지는데 대통령 당선인만 안 된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도 “국가원수 모독죄가 있는 시대도 아니고, 알아서 기는 시대착오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서수민 ‘개콘’ PD는 “정치를 제대로 해달라는 뜻인데 다른 쪽으로 받아들여 억울하다. 방송 이후 정태호씨가 테러 수준의 비난을 많이 받았다. 기가 많이 죽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통심의위 측은 “방송 직후 위원회 게시판에 무례하다는 항의글이 올라오고 심의를 요청하는 시청자 민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tvN ‘SNL 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 (2012년 10월) - “특정 후보 비하 논란” 국정감사 지적. 선거방송심의위 문제 없음 의결.

 ◆심의 형평성은 없나=이번 조치는 지난 대선에서 대선 주자들을 코믹 캐릭터로 비틀며 강도 높게 풍자했던 tvN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문제없음’ 판정을 받았던 것과 비교된다. 현재 잠시 쉬고 있는 ‘SNL코리아’는 3월 초 다시 방송될 예정이다. ‘여의도 텔레토비’의 재개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방통심의위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 출마를 하면 되는데… ”라는 개그맨 최효종의 발언(2011년 11월 ‘개콘’의 ‘사마귀유치원’ 코너)을 문제 삼으며 강용석 전 의원이 낸 국회의원 희화화 민원에 대해서도 ‘문제없음’을 의결했었다.

 손병우 충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노태우 대통령이 자신을 코미디 소재로 사용해도 좋다고 말한 후, 대통령 풍자는 더 이상 성역이 아닌지 오래다. 욕설이나 신체훼손 등 극단적인 선만 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코미디 하지 말라고 했는데 방통위가 코미디를 한 격”이라고 말했다.

 ◆외국은 어떤가=해외의 대통령 정치 풍자는 훨씬 신랄하다. 정치인들 역시 관대하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케이블TV ‘코미디 센트럴’의 정치풍자토크쇼 ‘데일리 쇼 위드 존 스튜어트’에선 ‘빌 클린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오바마 스타일’이라는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밋 롬니 후보에게 구명조끼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진행자가 구명조끼에 바람을 불어넣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2010년 중간선거 때 출연한 오바마에게는 “최근 2년 동안 어디에 있었습니까. 백악관에서는 안 보이던데”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가장 많이 출연한 TV프로다.

 박근혜 당선인도 지난해 1월 SBS ‘힐링캠프’에서 ‘개콘-사마귀유치원’ 코너에 대해 “정치권에서 반성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패러디도 워낙 많이 당해서 면역이 잘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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