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은행들 왜 자꾸 합치려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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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하나은행과 제일은행이 합병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어요. 하나은행은 여의도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어요.

제일은행은 상장은 되어 있지만 주식을 예금보험공사와 외국인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탈이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 거래되지는 않는답니다.

증권거래소는 주주들을 위해 합병 소문에 대한 은행의 입장을 밝히도록 요구했지요. 두 은행은 결국 "합병에 대해 결정된 것은 없으며, 앞으로 진행 사항이 있으면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답니다.

하나.제일은행의 합병설에 대해 증시에선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주가도 올랐답니다. 실제로 합병할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소매금융에 강점을 갖고 있는 두 은행이 합쳐지면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던 때문이죠.

두 은행이 합쳐질 때 1+1=2를 넘어서 1+1=3이 되는 이른 바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 합병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죠. 실제 합병한 은행도 적지 않고요.

일반적으로 은행들이 합병을 하는 이유는 몸집을 키워 각종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라고 말합니다.

덩치를 키우면 제품 하나를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평균비용)이 줄어드는 현상을 규모의 경제라고 합니다.그만큼 효율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거죠.

11월1일부터 출범한 국민은행은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쳐진 곳입니다. 소매금융 중에서도 가계금융에 강한 옛 국민은행과 주택담보대출 등 주택금융에 특화된 주택은행이 합한 것이죠.

한빛은행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서 생긴 은행입니다. 두 은행은 모두 예금으로 조달한 자금을 주로 기업에게 대출해주는 도매금융의 비중이 높았던 곳입니다.

국민은행이나 한빛은행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절감해보자는 취지에서 탄생한 합병은행이죠.

규모의 경제는 또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합니다. 덩치가 클 뿐더러 이익도 많이 내는 국민은행이 예금이나 대출 금리를 내리기로 하면 다른 은행들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는 것이죠.

국민은행의 덩치가 워낙 커져 다른 은행들은 정면으로 맞붙지 못하고 국민은행의 눈치를 살펴야 할 처지입니다.

은행들이 합병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다양한 분야에서 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한 은행은 소매금융에 강하고, 다른 은행은 도매금융에서 1등이라고 할 때 두 은행이 합쳐지면 소매.도매금융 모두에서 강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소매금융에 강한 은행이 도매금융을 키울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므로 아예 도매금융에 강한 은행과 합쳐버린다는 것이죠. 경제학에서 말하는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위의 경제는 한 기업이 여러 제품을 생산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이 제품들을 여러 기업이 나눠서 각각 생산할 때의 비용보다 싸지는 효과를 말합니다. 이같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합병하는 은행들끼리 겹치는 부분이 적어야 하겠지요.

옛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의 합병은 다른 은행간 합병과는 달리 규모와 업무 성격이 다른 은행간 합병이었습니다. 합병전 국민은행은 예적금 등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의 자금을 조달해 가계와 소기업에 대출하는 소매금융 위주의 은행이었죠.

반면 장기신용은행은 금융채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주로 기업에게 대출해 주는 도매금융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매금융의 강자인 국민은행과 기업금융의 노하우를 자랑하는 장기신용은행이 효율적으로 결합해 업무 다각화 등으로 인해 범위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었죠.

은행 합병은 부실한 은행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합병한 경우보다는 부실은행을 처리하기 위해 이뤄진 합병이 많습니다.

부실한 은행을 청산하거나 공적자금을 집어넣어 살리려고 하는 것보다 다른 은행에 합병시키는 게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고 돈도 비교적 적게 들어가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의 첫 합병은행은 1976년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이 합쳐져 탄생한 서울신탁은행(현 서울은행)입니다

. 서울신탁은행이나 그후 22년만인 98년에 이뤄진 상업+한일=한빛은행,조흥+강원+충북=조흥은행 등의 합병사례는 부실을 처리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답니다.

정리하면 은행 합병의 목적은 ▶규모의 경제▶범위의 경제▶부실 은행의 처리 등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나 일본같은 곳에선 부실 은행의 처리를 위해 은행 합병이란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일을 생각하기 어렵답니다.

미국의 경우 종전엔 대형화에 따른 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을 위해 합병이 이뤄졌고 요즘들어선 영업활동의 보완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거나 영업지역을 확대해 수익기반을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합병이 늘고 있습니다.

은행 합병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합병이란 게 서로 다른 두 회사가 합쳐지는 것이어서 합치기도 쉽지 않지만 합병후 조직 융합을 잘못하면 합병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대형 은행이 된 국민은행의 영향력때문에 대부분 은행들이 덩치를 키워 여기에 맞서기 위해 합병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래서 당분간 은행 합병에 관한 얘기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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