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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16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6·25」 16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소회는 비탄이라는 일어에 그친다. 16년전의 오늘 중무장을 갖춘 수십만의 북괴군은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해왔다. 의외의 침공을 당한 국군은 장비와 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힘을 다하여 용전하였다. 그러던중 「유엔」군의 참전으로 우리는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면서 전선을 정비하여 불과 몇달 사이에 막강한 국군을 길러 3개월후에는 적에게 치명적인 반격을 가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전세는 역전되었고 북진을 거듭하여 국군과 「유엔」군이 한·만 국경선에 육박하게 되자 중공군이 대규모 개입, 이때부터 동란의 성격은 일변하게 되었었다.
중공의 참전으로 한국동란은 지구적인 교착상태에 빠져 일면전투, 일면협상이라는 기이한 상태가 2년동안이나 계속되다가 53년 7월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그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휴전선을 경계로 하는 정전동결상황이 성립되어왔다. 동란초기의 「유엔」군 총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전략적인 구상대로 만주를 폭격했더라면 국토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는 해석의 정당성이 그후 점차로 입증되고 있음에 비추어 우리는 자유진영 일부 국가의 유화론 때문에 모처럼 있을 수 있었던 통일에의 호기를 일실케 된 것을 두고두고 한스럽게 생각한다.
동란당시의 국력과 16년이 지난 오늘의 국력을 비교할 때 전쟁의 쓰라린 상흔을 안은 세대는 누구나 격세지감을 금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폐허위에 부강한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해왔다. 우리는 아직도 자립경제 일보 전에 놓여있는 현재의 상태에 만족을 느끼지는 않지만 앞날의 번영에 충분한 자신을 가져도 좋게 되었다. 동란을 통하여 자라난 우리 국군은 「아시아」 자유진영에 있어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터요, 멀리 월남에까지 국군을 파견함으로써 자유의 대의를 위해 선전분투, 그 용명을 세계에 떨치고 있다. 이러한 경제력과 군사력의 증대를 배경으로 해서 우리국가외교는 소극적인 수동자세에서 탈피하여 「아시아·태평양제국 각료회의」를 서울에서 주최할 정도로 거대한 전진을 이루었다.
국력의 비약적인 증강은 현 시점의 국민으로 하여금 「6·25」 남침을 일장의 악몽처럼 회상케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외교·군사·경제 각분야에 있어서 지금의 현상에 결코 만족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직도 북한에는 공포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1천만명의 동포가 김일성 도당의 압제에 신음하면서 해방의 날을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요, 또 이들을 해방시켜줄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유 한국국민의 결속된 힘 이외에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계속해서 국력을 배양하여 모든 면에서 북괴를 압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춤으로써 통일문제에 있어서 능동적 자세를 취할 수 있는 바탕을 이루어놓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만이 「6·25」에 희생된 수많은 순국영령에게 보답하는 것이요, 또 이것만이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백년대계를 구축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국군의 월남파병 때문에 현재 우리는 두개의 전선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두개의 전선을 지탱하면서도 국가안전방위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지만 국군파월 때문에 한국을 위요한 군사정세의 경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그것을 부인 못한다. 우리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 점을 냉철하게 직시하여 한국전선에서 공산측이 또다시 어리석은 무력책동을 생각지 못하도록 괴뢰측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 두도록 해야 하겠다.
「6·25」와의 시간적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전쟁의 쓰라림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새 세대들이 차츰 성년이 되어감에 따라 자유와 반공의 의식이 해이되고 있는 경향이 없지 않다는 것은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겪고 공산주의의 비화를 직접 체험한 세대들이 후배들을 꾸준히 계몽하여 국민의 정신무장면에 있어서 단 하나의 허점도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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