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협정조인 1주년과 주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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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야당의 노성, 학생의 항거, 다가진 방학 등 일련의 비정상적 상황이 소용돌이 치는 가운데 14년이나 끌어온 지루한 협상에 종지부를 찍고 한·일 협정이 조인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솔직이 말해서 당시의 상황으로만 미루어본다면 조인, 비준후의 국내정국은 월등히 더 어지러워지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빨리 안정은 회복됐고 그때의 열띤 함성은 그 편린도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안정의 급속한 회복을 나무랄 수는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안정속에서 다시 일본을 받아들이게 된 것을 지극히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이 참다운 선린, 구김새없는 공존공영을 위한 강한 주체성위에 자리잡은 것이 아니고 또 격정을 자제할 줄 아는 역사적 민족으로서의 자질을 바탕삼은 것이 아니라 한다면 우리는 그런 부자연한 조화를 크게 반성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거년 이맘때부터 우리가 일본 사이에 설정해온 유대라는 것은 지난 우리의 전후 20년사 중에서도 확연히 질이 다른 것이었음으로 해서 주체성의 유지·고양이라는 것이 국가적 생존의 과제로 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주체서의 유지·고양이 결여된다 한다면 정치적 경제적 지역화의 추세가 요구하는 새로운 외곽에의 적극적 적응을 위해 우리 정부의 의지로 선택됐던 이 역사적 결단이 결국은 오유화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일 협정조인 1주년을 보내면서 특히 정신적 대일 자세에서 우리는 많은 반성의 자료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과연 떳떳하게 국가의 이익을 가꾸고 민족의 위신을 지켰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하나 여기에 들추어낼 겨를도 없지만 우리의 주체성은 가냘프게 그 명맥만 유지해 왔다는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더우기나 그것이 정신적 대일 자세에 관한한 위는 정부의 고관으로부터, 아래는 안내원에 이르기까지 반성의 여지는 많다. 마비된 대일 경계심, 추악한 굴종, 그 어느 경향에서도 우리의 분노는 멈추질 않는다. 기실 주체성이라는 것을 분석해볼 것 같으면 그것이 결정적으로 결여될 때의 현상으로 배타가 아니면 굴종이 나온다. 물론 배타가 옳고 굴종이 그르다는 말은 되질 않는다.
어느 것도 타기 돼야할 풍습이지만 그 중에서도 굴종은 더욱 저열하다. 일본을 받아들이는 정신적 자세에서 특히 경계되어야할 것은 바로 이 굴종이다. 굴종이 앞서는 몸가짐으로 국가이익·민족위신이 가꾸어지고 지켜질 까닭은 없다.
한·일 협정조인 1주년을 맞아 선린의 참다운 모습을 시급히 소생시켜야 한다는 말은 곧 그런 굴종을 먼저 분쇄하고, 나아가 배타도 배격한다는 말로 될 것이다.
한편에 저항의 아우성을 들으며 또 한편에 굳게 닫혀진 학교의 문을 목도하면서 일본과 다시 손을 잡게된 1년 전 오늘과 그후 1년의 경과를 더듬으면서 우리는 주체성이라는 낱말로 표현되는 민족의 정신적 영광에 크게 유념해야할 필요를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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