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종전교섭의 막후(2)=레나드·모슬리(LEONARD·MOSLEY)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7월 27일 동향 외상은 단파로 잡은 「포츠담」 선언문 사본을 가지고 궁성으로 들어갔다. 선언의 내용은 황실문제에는 언급이 없이 일본국민에 대해 언론·종교 및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전군대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것이었다.
동향은 이 선언이 현재 일본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것이라고 천황에게 말했다. 천황도 내용을 한구절 한구절 검토하고 나서 원칙적을 수락 가능하다고 말했다.
육군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포츠담」 선언의 발췌된 부분이 일본신문에 보도됐다.
물론 『일본국 군대는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생활을 즐길 기회를 준다』는 등의 요긴한 구절은 삭제되어 보도됐다. 일반국민의 반응은 그저 담담한 편이었다.

<국민들의 생각과 내각 생각이 달라>
그런데 천황과 국민이 「포츠담」 선언이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내각은 즉시 이 선언을 수락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일부 각료들은 놀랍게도 어떻게든지 소련에 부탁해서 화평을 이룩해 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일본의 성의와 중립을 존중하고 화평을 중재해주겠지, 이 마당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것은 소련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게 된 영목 총리의 실수>
한편 연합국은 「포츠담」 선언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영목 총리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는 사전에 용의주도하게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포츠담」 회담은 「카이로」 선언의 반복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를 「묵살」하고 전쟁완수에 매진할 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종전후 총리가 그렇게 말한 것은 소련이 중재해줄 때까지 「포츠담」 선언을 묵살하려고 했다고 일본은 변명하고 있다. 또 그 총리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묵살」이라는 말이 오역되어 동맹통신을 거쳐 해외에 발신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전문에 묵살이 「Ignore」(무시한다)가 아닌 「Reject」(거부한다)로 번역되어 이 때문에 연합국에 일본이 그 선언문을 완전히 거부한다는 심증을 주었다는 것이다.

<광도에 원폭투하 소련도 만주 침입
천황은 광도의 원폭투하 보고를 궁성 안뜰을 거닐 때 받았는데 참상이 소상히 보고될 때마다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날밤은 지하방공호에서 거의 뜬눈으로 새우면서 동생 고송궁과 정세를 검토하였다. 이때의 모습을 목호 내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천황은 희생된 무고한 시민생각에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 신상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8월 6일 인류사상 최초의 원자탄이 광도에서 버섯구름을 피웠다. 며칠후에 소련은 늦일세라 일·소 중립조약을 깨뜨리고 지상군과 공군기를 만주에 쓸어넣었다.
영목 총리의 우유부단한 거동이나 문제의 묵살발언이 물론 원자탄 투하와 소련참전의 절대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그런 사태초래를 조장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외신부]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