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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통상 4.0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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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인수위가 통상기능을 외교통상부로부터 분리해 지식경제부로 이관하고 지식경제부를 산업통상자원부로 개편한다는 안을 발표한 후 통상조직 개편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논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려면 왜 한국에서 통상이 중요한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수의 통상대국이다. 지구상 200여 국가 중 무역 규모 8위, 무역의존도가 100%에 이르는 국가이고, 정보기술(IT)·가전제품·반도체·조선·석유화학·철강·자동차 등 중화학공업에서 글로벌 기업을 가진 나라다. 그동안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보호무역주의가 비등할 때마다 한국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지켜낸 것은 통상전사의 노고 덕분이다.

 196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 가입으로 세계시장에 접근하면서 무역주도형 경제성장을 시작하던 통상 1.0 시대, 80년대 미국의 통상압력과 우루과이라운드의 개방 파고를 겪으면서 소비자 후생, 효율성 향상을 중시하는 개방체제로 변모하던 통상 2.0 시대를 넘어, 지난 15년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한국의 입지가 위축되는 상황을 극복하려던 통상 3.0 시대였다.

 통상 3.0 시대의 지상과제는 한국의 경제영토를 확충하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통상교섭본부는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한 건의 FTA도 체결하지 못했던 한국은 지금은 거대 선진경제권인 미국, EU 등 47개국과 10건의 FTA를 체결한 FTA 선도국가로 비약했다. FTA 체결국들의 GDP를 합치면 세계 GDP의 61%나 될 정도로 경제영토도 크게 확장됐다.

 이제 한국은 통상 4.0 시대에 들어섰다. 신정부는 무역과 내수를 모두 중시하는 쌍끌이 경제 비전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 비전을 실행에 옮기려면 남다른 전략과 결단력이 필요할 듯하다. 전문가들은 서비스 빅뱅이 있어야만 내수가 획기적으로 확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구 5000만 명, 저출산 고령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외국 자본과 해외 인력, 외국 소비자를 국내로 끌어들여야 한다. 지난 15년 동안 세 번의 정부가 말로만 외쳤던 서비스 내수기반이 살아나기 위한 실천전략의 핵심은 서비스 개방이다. 내수확충은 당장 실현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경제영토 확장은 내수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성장을 위해 오히려 더 절실하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경제영토는 개도국인데, 그들은 한국의 농업 개방을 요구한다. 문제는 한국의 정치적 정서가 서비스와 농업을 약자로 간주하고 무작정 보호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면 통상 4.0시대에 한국은 낙오될 우려가 크다.

 통상조직 개편 논의의 핵심은 새로운 조직이 통상 4.0 시대에 한국의 더 큰 발전을 선도할 수 있을 만큼 통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신정부가 출범하면 당장 WTO에서 20년간 유예받아 온 쌀의 관세화 협상을 해야 한다. 미국 쇠고기 촛불시위와 같은 망령이 되살아난다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지난해에 시동을 건 한·중 FTA, 한·중·일 FTA 협상도 국익과 직결되어 있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산업에 대한 전문성, 국제규범에 대한 지식, 교섭능력 이 세 가지를 통상조직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요체로 꼽았다. 세 가지 요건이 가장 화학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조직이 되어야만 통상 4.0 시대의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통상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고민을 같이해 온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쪼록 통상교섭본부가 그간 쌓아온 역량이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깊은 고려를 해주기 바란다.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