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연중최고 경신에 전문가도 당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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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주가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며 급등세를 보이자 23일 각 증권사 지점들은 술렁거렸다. 창구직원들은 하루종일 평소보다 50% 이상 늘어난 매매 주문을 처리하느라 바빴고 향후 장세를 묻는 전화상담 건수도 배나 많았다.

서울증권 서초지점의 객장에는 40여명의 투자자들이 몰렸다. 주식투자를 하지 않던 주부.노인들도 모습을 보였다. 창구 직원들은 상담전화에 "대세상승이 올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모두가 들뜨면 상투"라는 우려섞인 반응을 보였다.

굿모닝증권 한홍삼 계양지점장은 "신규계좌 개설 건수가 평소보다 2~3배 늘고 뭉칫돈도 유입되는 조짐"이라며 "그러나 장세가 외국인 선호종목 중심으로 전개되다 보니 개인들은 별 재미를 못보고 있다"고 말했다.

◇ 엇갈리는 투자자들 희비=지난달부터 주식을 연일 순매도했던 기관들은 이날 주식을 순매수했지만 주가 급등세에 오히려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조정을 기다리며 매수 시기를 노리고 있었는데 주가가 예상 외로 크게 오르자 주식비중을 당장 확대하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굿모닝투신운용 강신우 상무는 "솔직히 기관들이 이번 장세에 잘못 대응했다"며 "채권금리가 상승하자 돈을 주식에 넣어야 할지 아니면 조정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몰라 난감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신경제연구소 정윤제 수석연구원은 "일단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블루칩 등 시가총액 상위종목들로 매매를 국한시킬 필요가 있다"며 "증권주.건설주 등 개인선호주들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굿모닝증권 서준혁 연구원은 "기관투자가들이 조정 가능성을 우려해 블루칩보다 그동안 상승폭이 작았던 가치주를 살 가능성이 크므로 이들 종목에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번 장세 특징=철저하게 외국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지난달부터 3조원 가까이 한국 주식을 사들였다. 이에 따라 외국인이 선호하는 블루칩이 크게 올라 종합주가지수를 띄우는 바람에 기관투자가와 개인들은 '속빈 강정'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우량종목의 외국인 지분이 대부분 60%에 달해 외국인 매수가 조금만 몰려도 블루칩 주가는 소형주처럼 거칠 것 없이 올랐다. 굿모닝증권의 이근모 전무는 "지수에 비해 블루칩 주가상승률이 큰 반면 대중주는 매물에 밀려 힘을 못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급불균형도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풍부한 유동성에다 저금리, 그리고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외국인들이 공격적인 순매수를 펼치는 동안 기관과 개인들은 멈칫거렸다. 사자는 세력은 있고 적극적으로 팔려는 매도주체가 실종되는 바람에 매물공백이 빚어지면서 지수가 예상 외로 급등했다는 분석이다.

조정다운 조정도 없었다. 외국인들은 매집한 블루칩을 쥐고 있을 뿐 내놓을 기미가 없고, 지수 상승을 따라잡지 못한 기관과 개인들의 두터운 대기매수세에 증시는 지칠 줄 모르고 상승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아직 경기회복이 가시화하지 않은데도 주가가 급등했다"며 "경제지표가 주가를 뒷받침해주지 않을 경우 추격매수에 나서는 국내 기관과 개인들이 외국인들의 차익매도에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 주가상승의 명암=주가 상승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다. 정부가 금리 인하.장기증권 저축 도입 등으로 주가 올리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주가가 오르면 우선 기업이 가장 이득을 본다. 기업은 유상증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자금을 조달해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는 결국 기업의 수익성 개선→투자 증대→실업 감소 등의 선순환을 낳게 된다.

주가가 상승하면 개인투자자들이 투자이익을 올릴 뿐 아니라 정부도 공적자금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재경부는 "종합지수가 900선까지 오르면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주를 매각해 공적자금의 상당부분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주가 급등으로 단기적인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자 우선 원화환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채권시장에서 채권 수익률(금리)이 올라 한계기업들은 다시 금융비용 부담 증가를 걱정하고 있다.

주가상승이 외국인 독주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외국인 의존도가 높아져 돌발 악재로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이탈하면 증시는 물론 경제 전반에 큰 충격파가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보증권 김석중 상무는 "증시 개방 이후 외국인이 일시에 빠져나간 적은 외환위기 때 뿐"이라며 "우리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외국인의 한국탈출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전망했다.

이희성.하재식 기자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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