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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한민족 디아스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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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 민족은 남북한 8천만에 이른다. 그리고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 즉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700만으로 추산한다. 그 중 중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이 300만에 육박하여 전체 재외동포의 40%를 상회한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그리스어다. 히브리어로 된 고대 구약성경의 “그대가 이 땅의 모든 왕국에 흩어지고” 라는 성경구절 “흩어지고”가 파종(播種)의 의미인 그리스어 디아스포라로 번역되면서 이스라엘인의 이산(離散)처럼 민족의 이산을 표현해 왔다.

최근 재중 한국인회의 7대회장이 선출되어 금년 1월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다. 1992년 중국과 수교된 후는 대사관이 소재하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국인회가 결성되었으나 칭다오(靑島)출신의 정효권 회장 때부터 베이징 이외 지방에 사업의 기반을 가진 한국인이 맡기 시작 이번에 선출된 텐진(天津) 출신의 황찬식 회장이 두 번째로 보인다. 한국인의 첫 진출기지인 산동성 칭다오가 제조업의 중심도시였다면 톈진은 IT산업 중심지로 한국인의 진출이 비교적 늦었지만 빈하이(濱海)지구를 중심으로 첨단산업이 발전하는 도시이다.

중국은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시발점이었다. “코리아”라는 민족명도 고려(장수왕은 국명을 고구려에서 고려로 바꿈)의 멸망으로 당(唐)에 유입된 한민족 디아스포라(고려유민)에 의해서다. 당은 고려(고구려)의 부흥을 두려워 해 베이징 근처의 고려유민을 서북지역 실크로드 주변에 강제 이주시켰다. 이곳 출신인 고선지(高仙芝)장군 등 고려인이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을 통해 서양에 알려 진 것이 최초였다. 중국은 지금도 세계 어느 곳보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작년 9월3일은 중국의 조선족 동포에게는 의미가 큰 날이었다. 1952년 9월3일 조선족 자치구(후에 자치주로 변경)설립60주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가장 먼저 중국에 이주한 것이 BC108년 한무제(漢武帝)에 의한 고조선의 멸망시기로 잡고 있어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역사는 2000년 이상이 된다고 한다. 그 후 7세기 중반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삼국이 해체된 이래 일본의 강점치하를 거쳐 1970년대 해외이민 열풍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후손을 합하면 2000만이 될 것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중심지인 중국에서 조선족(old comer)이든 한국인(new comer)이든 민족적 유대감을 잃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협력하여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성공시대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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