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실습교육 현장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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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초대를 받아 멋진 레스토랑에 왔다고 해요. 상대편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메뉴에서 제일 싼 8천5백원 짜리를 시켜야 할까요?"

"초대 받은 자리에서 제일 싼 걸 시키는 건 에티켓에 어긋나는 거예요. 고대 여학생들이야 8천5백원짜리 사준다고 해도 좋아하겠죠?"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지난 16일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 2층 연회장.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남녀 90명의 시선이 30대의 젊은 강사에게 쏠려 있다. 테이블 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 이들은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학생들.

고대 경영학부가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개설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과 비즈니스 매너'라는 3학점 짜리 전공 과목의 '테이블 매너'현장 실습에 참가한 것이다.

수업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반장의 신호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난 학생들. "안녕하십니까"란 말과 함께 허리를 45도쯤 굽혀 인사한다.

이렇게 공손한 자세로 인사하는 법도 이 과목에 포함된 내용.

그 외에도 비즈니스맨을 위한 이미지 전략, 호감을 주는 대화 예절, 휴대폰 매너,발표 요령, 음주 문화 및 매너, 다도(茶道)등 매너와 에티켓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운다.

이 과목을 맡고 있는 강사 허은아(여)씨는 대한항공 스튜어디스 출신. 1999년 에티켓 교육과 서비스 컨설팅 전문 회사 '예라고'를 만들었다. 허씨는 스스로를 '매너니아'라고 부른다. '매너 매니아'란 뜻.

허씨의 수업방식은 다소 특이하다. 좌석 실명제를 도입, 학생들은 이름표를 항상 앞에 놓고 수업한다. 덕분에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

수업 시작과 끝에는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한다. 수업 시간에는 실습을 함께 하면서 학생들의 행동을 일일이 수정해 준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허씨에게 감사 e-메일을 보내는 건 기본. 인터넷에 만들어 놓은 커뮤니티에도 애교 섞인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지난주 정장 차림에 대해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학생입니다. 아주 삭아 보였던 학생을 떠올려 보십시오. 지적 받은 부분을 고치고 면접 보러 갔는데 글쎄 합격이래요. 선생님, 첫 월급 타면 커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김동수(26)씨도 면접에서 효과를 본 경우.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한국투자신탁증권.SK글로벌 등 3개 회사에 합격했다. '배운 대로'했더니 되더라는 게 김씨의 말.

4학년 송주연(22.여)씨는 매너의 가장 큰 적(敵)은 쑥스러움이라고 말한다.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챙겨주는 게 예의란 걸 알면서도 못해요. 여학생들도 부담스러워하지요. 하지만 이 수업을 들은 뒤 남학생들의 배려를 당당하게 받을 수 있게 됐어요."

매너를 체계적으로 배운 때문인지 다들 표정이 밝고 활발하다. '막걸리'로 대표되는 고려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

이정윤(26)씨는 '신사 고대'론을 제기했다.

"거칠고 남성적인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 버리고 매너를 중요시하는 신사 고대로 새롭게 도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씨의 학생 사랑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이 너무 열심히 하고 똑똑한 덕분에 저도 논리정연하게, 깊게 공부하게 돼요.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게 너무 좋아요."

학생들의 좋은 반응 덕에 내년 1학기에도 이 강의는 계속될 예정이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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