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PC통신 … 고향 잃는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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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씨는 “PC통신은 커뮤니티 중심, 포털은 트래픽 중심”이라고 했다. [김상선 기자]

“고향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요. 동네 정자나 빨래터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에요.”

 IT컨설턴트 임문영(47)씨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간 PC통신 나우누리의 대표 시삽(운영자)으로 활동했던 왕년의 ‘나우지기’다. 31일 나우누리가 서비스를 완전 종료한다는 소식에 그는 “하이텔 에 이어 나우누리마저 문을 닫았으니, 이제 국내 PC통신 시대가 거의 저물어 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나우누리는 당시 한글 아이디(ID)를 도입하고 소규모 동호회 활동을 활성화하면서 하이텔·천리안과 함께 국내 3대 PC통신 업체로 성장했던 회사다. PC통신은 전화선을 기반으로 하는 유료 통신 서비스로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후 다음·야후·네이버 등 무료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최근엔 TV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들이 PC통신으로 채팅을 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30~40대 시청자들의 추억을 자극했다.

 임씨의 첫 직장은 하이텔을 운영하던 한국PC통신이었다. 93년 그는 『하이텔 길라잡이』를 펴내 ‘길라잡이’란 이름의 컴퓨터 사용설명서 출판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1~2009년에는 iMBC에서 미디어센터장 등을 지냈고 현재는 미디어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최근엔 지난 20여 년간 관찰한 네티즌들의 속성을 분석해 『디지털 시민의 진화』를 펴냈다.

 PC통신 시대와 인터넷 포털 시대를 가로질러 이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도달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임씨는 ‘광장이 사라진 시대’라고 말했다. 현재의 SNS는 열린광장이 아니라 벌집처럼 칸막이 쳐진 격자공간에 가깝다는 것이다.

 “트위터는 세를 과시하려는 정파들이 일방적인 구호와 주장만 외쳐대는 바람에 부담스러운 매체가 돼버렸습니다. 페이스북은 가식의 천국이죠.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여행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공간. 카카오톡은 개인간의 메신저에 가깝고요. 주도적인 여론을 확인할 수 있는 광장이 없다고 봐야합니다.”

 대선 이후 디지털 세상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고 전했다. 패배감에 빠진 1400만 야당 지지자들에게서 냉소와 묵언의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했다. “욕하기를 멈추는 것은 그다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죠. 지난 대선에서 침묵하던 50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처럼 네티즌들의 침묵이 어떤 계기를 맞아 더 큰 폭발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는 지난 23일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SEERS)’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옛 PC통신처럼 서로의 솔직한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는 평등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터넷을 통해 광대한 정보가 제공되고 친구들은 늘어나지만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트래픽만을 중시하는 포털의 특징 때문일까요. 커뮤니티와 커뮤니티를 이루는 사람들간의 교류가 중요한 옛 PC통신의 모습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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