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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철 칼럼] 머리끄덩이녀를 위한 변명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07호 30면

“그녀를 풀어줬어야지요. 그녀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은 이미 버렸어요. 검찰에서 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법원이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하고 말더군요. 그날 나를 똑같이 폭행했던 다른 사람들은 집행유예로 풀어주면서요.”

여기서 그녀는 일명 ‘머리끄덩이녀’로 불리는 24세 박모씨다. 당시 머리채를 잡힌 전 통합진보당 조준호 대표는 최근 필자와 만나 “그녀가 참 안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재판부가 형평성을 잃고 그녀에게만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실형 선고는 유감스럽게도 결정적 증거가 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이를 악물고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그녀, 집단폭력에 고통스러워하는 조 대표의 표정이 흑과 백처럼 너무도 강하게 각인됐기 때문이리라. 사진기자협회는 25일 머리끄덩이녀 사진을 2012년 한국보도사진 대상으로 선정했다.

지난해 5월 12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선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비례대표 후보자 총사퇴 안건’ 처리를 둘러싸고 비당권파와 이를 저지하려는 당권파 사이에 극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권파에 속한 그녀는 조준호 당시 공동대표의 머리채를 잡아당겼고, 그 모습이 중앙일보에 보도됐다. 이어 인터넷에도 널리 퍼지게 됐다. 졸지에 악명 높은 머리끄덩이녀가 된 그녀는 2개월여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가 자수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4일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씨의 행위는 정당정치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으로 죄가 무거워 실형을 선고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진이 없었다면 그녀가 구속되고 실형을 선고받았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녀도 아수라장이 된 단상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폭행에 가담한 50여 명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조 대표는 머리채를 세 명 이상이 잡아챘다고 했다. 심상정·유시민 공동대표보다 당권파에 더 밉보인 조 대표는 한동안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폭행을 당했다.

기자들도 폭력의 틈바구니에서 카메라를 머리 위로 든 채 사진을 찍어야 했다.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오직 고함과 비명소리를 방향 삼아서다. 앞에서 옆에서 위에서 조 대표에게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했어도 가해자의 얼굴이 없는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얼굴 없는 사진은 긴장감이나 현장감이 떨어진다. 그녀만이 카메라 렌즈에 조준호 대표와 완벽한 표정으로 잡혔다. 아니 필자의 카메라에 그녀가 들어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녀보다 더한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이 적지 않은 데도 말이다.

당시 폭력사태의 배후 주동자들이 있을 텐데 사진 증거가 없어선지 그들을 소환하거나 조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이런 상황인데 어쩌다 얄궂게 사진에 찍힌 그녀가 왜 옥살이를 억울해하지 않겠는가. 자신보다 큰 죄가 있는 사람들은 멀쩡한데 자신만 옥살이를 한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녀 또한 피해자다. 인터넷에선 그녀를 악녀로 표현하는 등 온갖 언어폭력과 인신공격을 일삼았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녀의 잘못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검찰·법원은 얼굴 없는 폭력 주동자를 모른 체하면서 그녀를 속죄양으로 삼은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폭력사태의 주인공은 결코 그녀가 아니었다. 일부 인터넷 매체는 그녀의 초상권이 침해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국민들의 관심사였던 정당 공식 행사에 참석했고, 언론 취재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초상권 침해 운운은 과장된 얘기일 뿐이다.

필자는 상을 받아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편치 않다. 그녀의 불행이 그 사진 때문에 시작됐고, 형평성 없는 재판부 판결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판결은 이미 내려졌다. 이젠 피해자든 가해자든 분노와 원망 대신 평안과 사랑이 함께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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