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스토커'는 최고로 예술적인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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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한국 영화감독들의 할리우드 진출 ‘원년’으로 기록될 만한 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실력파 감독 박찬욱(50)과 김지운(49)이 할리우드에서 첫 영어 영화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인들의 할리우드행은 배우들이 주도해 왔다. 감독들의 본격 진출은 할리우드 메이저 시스템이 한국 감독의 연출력을 인정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Stoker)’는 20세기폭스의 자회사 폭스서치라이트가 제작과 배급을 맡았다. 김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The Last Stand)’는 ‘트랜스포머’ ‘지.아이.조’ 시리즈를 만든 디보나벤추라가 제작하고 대형배급사인 라이온스 게이트가 배급했다. 이들이 문화 장벽을 넘어 미국 대중영화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K무비’ 혹은 ‘K필름’으로 불리는 ‘영화 한류’의 향후 가능성이 걸려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영화는 세계적 권위의 영화제에서 줄줄이 수상하며 인지도를 높여 왔다. 박 감독도 ‘올드보이’(2004)와 ‘박쥐’(2009)로 칸 영화제에서 두 차례나 상을 받았고, 김지운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장화, 홍련’(2003) 등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채프먼대 영화학과 이남 교수는 “그동안 두 감독에 대한 관심이 주로 영화산업 관계자와 매니어 층에 한정돼 있었는데, 이제 이들이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 들어와 미국, 나아가 세계에서 보다 폭넓은 관객과 만나게 됐다”고 평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 ‘라스트 스탠드’는 18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됐다. 니콜 키드먼을 내세운 ‘스토커’는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20일 개막한 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둘 다 철저히 상업적인 팝콘 무비(김지운)와 작가주의적 색채가 강한 예술 영화(박찬욱)로, 장르와 타깃 관객층이 판이하다. 하지만 두 한국 감독과 작품에 대한 관심만큼은 똑같이 뜨거웠다.

선댄스 영화제 최고 화제는 ‘박찬욱’

‘스토커’는 20일부터 27일까지 열린 ‘2013 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선댄스 영화제는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의 전설적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도해 만든 세계 최대의 독립영화 축제. ‘스토커’가 21일(현지시간) 공개된 후 영화제 참석자들의 화제는 ‘Chanwook Park’이라는 이름 석 자였다. 박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22일엔 치열한 티켓전쟁이 벌어졌다. 티켓을 구한 사람들도 조금이라도 앞자리에서 박 감독을 보기 위해 두시간 전부터 줄을 길게 늘어서는 풍경을 연출했다.

베일을 벗은 ‘스토커’는 관객과 평단을 매료시켰다. 단순하면서도 겹겹이 층을 이루며 심도를 더해가는 강렬한 이야기 구조는 러닝타임 98분 내내 객석을 파고들었다. 치밀하게 디자인된 영상과 사운드는 비밀스러운 캐릭터들과 더해지며 섬뜩한 긴장감과 서늘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선사했다. 엄마와 딸, 삼촌의 불편하고도 팽팽한 삼각관계는 한 특별한 소녀의 기괴한 성장 스토리로 승화되며 ‘박찬욱 월드’의 개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프리미어 직후 열린 애프터 파티에서 박 감독과 니콜 키드먼, 미아 바시코브스카, 매슈 굿 세 주연배우는 몰려드는 사람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이튿날 영화진흥위원회 주최로 열린 ‘선댄스 한국영화의 밤’ 행사에서도 이런 풍경은 이어졌다. 숙소와 행사장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도 ‘스토커’의 감흥을 나누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시내에선 ‘박찬욱의 열혈팬’임을 자처하는 택시기사도 만날 수 있었다.

유력 외신들은 월드 프리미어 직후부터 경외에 가까운 찬사를 쏟아냈다. 버라이어티는 “미국 영화 제작으로 자신의 특출 난 재능을 가져 온 박찬욱 감독은 ‘스토커’를 통해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줬다”며 “특출나고도 절묘하게 디자인된 영화”라는 평을 내놓았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박 감독은 오랜 세월 동안 볼 수 없었던 최고로 예술적인 스릴러를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스토커’는 3월 1일 미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라스트 스탠드’ 평가는 극과 극
‘라스트 스탠드’에 대한 현지 반응은 선명하게 양분됐다. 개봉 전 프로모션 초반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이달 초 할리우드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선 예상치 못했던 깨알 같은 유머에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졌다. 다음날 열린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도 뜨거웠다.

주연을 맡은 슈워제네거는 “엄청난 비전을 지닌 데다 언어 장벽을 넘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할 줄 알고 모든 스태프와 잘 어울려 일하는 감독”이라며 치켜세웠다. 김 감독을 할리우드로 스카우트해온 할리우드 거물 프로듀서 보나벤추라 역시 “촬영 현장 분위기가 달라 문화 쇼크가 있었을 텐데 이를 잘 극복하고 모두와 협동해 멋진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분업이 확실하고 의사 결정 과정이 복잡한 할리우드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해 배우와 제작진을 만족시킨 점만큼은 확실히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김 감독이 목표로 했던 ‘소프트 랜딩(연착륙)’은 무사히 이룬 셈이다.

개봉에 임박해 할리우드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에서도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레드카펫 행사가 열린 할리우드 거리는 출연진을 보려는 영화팬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영화 상영 직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매체들의 리뷰는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온라인 매체들은 100%에 가까운 극찬을 내놓았다. 반면 인쇄 매체의 리뷰는 온도 차가 극명했다. LA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버라이어티 등은 호평이었다.

AP통신의 영화평론가 크리스티 르마이어는 “김지운 감독은 영화 속 모든 장면을 생기 넘치게 이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영화”라는 호의적인 평을 내놨다. 반면 워싱턴포스트, 보스턴글로브,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 등은 혹평을 했다. “슈워제네거가 액션 스타로서 더 이상 충분한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이 골자였다.

이 같은 혹평은 결국 예상치를 밑도는 첫 주말 성적으로 이어졌다. ‘라스트 스탠드’는 주말 동안 북미지역에서만 721만 달러(약 77억원)를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9위에 올랐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아무도 슈워제네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이 불륜과 사생아 사건으로 이미지가 추락한 그의 컴백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작진은 슈워제네거의 지명도가 높은 아시아와 여러 조연진의 출신지인 남미권에서는 또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개봉은 다음달 21일이다.

LA(캘리포니아)·파크시티(유타)=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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