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해부⑤|무역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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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방측의 경제 봉쇄로「코메콘」(사회주의제국 상호 경협기구)체제 속에 칩거해온 중공이 중·소 관계의 악화와 동·서 교역의 해빙「무드」에 편승, 보다 적극적인 경제적 대 서방 접근을 시도한 지는 오래다.
특히 금년에「스타트」한 제2차 국민경제 5개년 계획은 급속한 공업화에 필요한 생산재의 대량 수입과 이를「커버」하는 수출확대의 필요성을 제기시켜 무역정책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교역대상은 초기의 공산권 중심에서 정치적 의도도 첨가되어 최근에는 동·서 무역으로 그 중점이 눈에 띄게 옮겨지고 있는것이 특색.
55연도에 72.5%대 27.5%의 비율을 나타냈던 중공의 공산권 및 서방측과의 무역추세는 63년을 고비로 역전 되었으며 64년에는 35.8%대 64.2%를 기록, 대서방 무역이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59년에 수출입 총액의 50%를 점했던 대소 무역은 63년 5억4천만「달러」, 64년 4억「달러」로 격감했으며 「루마니아」와「알바니아」를 제외한 동구라파 각국과의 무역량도 같은 비율로 줄어들었다.
반면「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불란서의 곡물과 아아제국이 원료, 서북구 및 일본의 각종 기계「플랜트」(단위공장 시설재의 포괄적 호칭) 수입은 해마다 늘어 55년에 8억「달러」로까지 팽창했다.
이러한 무역추세의 변모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되도록 빨리 공업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록 서방측으로 부터 라도 필요한 자재는 들여와야 겠다는 의도를 뜻하는것-.
본사점령은 16년간에 중공이 거쳐온 경제 성장과정은 ▲경제부흥(49∼52년) ▲제1차 5개년 계획(53년∼57년) ▲제2차 5개년 계획(58∼62년) 및 ▲경제조정(63∼65년)의 4기간으로 구분했다.
이 기간의 초기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제국의 경제봉쇄로 소련에서 기간산업시설 자재를 대량으로 공급받은 중공은 60년대에 와서 소련의 경원중단으로 타격을 입으면서도 1백26개국과 지역에 까지 무역을 확대했다.
16억「달러」에 달하는 대소 채무를 청산, 중공은 55년의「반둥」회의를 고비로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이들 여러나라에 저리의 차관을 공여하고 소규모 공장시설까지 수출했다.
서구 각국이 중공에서 상품전시회를 열고 경제인·기술자가 빈번히 왕래하고 있는 것은 안정된 시장을 확보하려는 속셈때문-.
이미 서독은 7천만「달러」의 대규모 철망「플랜트」·화력발전 설비, 영국은 화학「플랜트」에 대한 상담을 진행시키고 있으며 일본도「정경분리」를 표방, 딴 나라에 뒤질세라 대중공 진출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봉쇄, 한국전란, 소련의 경원중단, 흉작등의 위기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른 중공이 서방측과의 교역을 확대하려는 것은 그만큼 면밀한 현실적 필요와 정치적 타산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서방측이 중공에서 시장을 얻으려면 그후에 올 사태에 대해 면밀한 배려를 다해야 할것이다.
그것은 서방측이 중공경제의 생산력을 가일층 촉진시켜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과 이상의「그무엇」을 길러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순>

<차례>①북평의 대외정책 ②교조주의의 고수 ③중앙의 군사력 ④미국의 대중공관 ⑤북평의 무역 정책 ⑥중공의 과학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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