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이 적군 되니 술 한잔 못하는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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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산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임달식 감독(왼쪽)과 위성우 감독. 임 감독이 가진 공을 위 감독이 뺏으려는 포즈를 하고 있다. [경산=프리랜서 공정식]

“네가 잘하니까 나도 좋다.”(임달식 감독) “다 감독님에게서 배운 거죠.”(위성우 감독)

 덕담이 이어졌다. 웃고 떠들다가도 가끔 뼈 있는 말이 오갔다. 이젠 경쟁자로 돌아선 여자 프로농구 임달식(49) 신한은행 감독과 위성우(42) 우리은행 감독의 만남은 유쾌했지만 마냥 편할 순 없었다.

 임 감독은 2007년, 위 감독(당시 코치)은 2005년 신한은행에 입단했다. 둘이 감독-코치로 호흡을 맞추는 동안 신한은행은 통합 5연패를 이뤘다. 임 감독 부임 전인 2007년 겨울리그를 포함하면 6연패다. 하지만 ‘레알 신한’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 4월 위 감독이 우리은행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둘은 경쟁자가 됐다. 지난 시즌 최하위 우리은행은 위 감독 부임 후 17일 현재 20승5패로 선두다. 신한은행(17승8패)은 3경기 차 뒤진 2위다. 지난 15일 경북 경산에서 진행 중인 챌린지컵 맞대결 뒤 두 감독을 만났다.

 -서로 자주 연락하고 지내나.

 임달식(이하 임):“위 감독이 우리은행으로 옮긴 뒤 사석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다.”

 위성우(이하 위):“감독 계약 발표 뒤 주변에서 ‘감독 체면도 있으니 감독-코치 시절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부담되더라.”

 임 감독이 위 감독에게 “한 잔 마시라”며 잔을 건넸다. 술을 잘 못하는 위 감독이 “한 팀에 있을 땐 감독님이 술을 권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임 감독은 “그땐 네가 아군이니까 그랬지”라며 허허 웃었다.

 -신한은행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위:“감독님이 정말 독하게 했다.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통합 6연패는 절대 없었을 거다.”

 임:“대표팀 감독으로 3년 있는 동안에도 연속 우승을 했다. 그만큼 코치들이 내 공백을 다 메워 줬다는 뜻이다.”

 -위 감독이 우리은행으로 이적하며 적이 됐다.

 임:“축하해 줬다. 영전해 간 거니까. 물론 아쉽고 섭섭한 건 조금 있었다. 그래도 성우야, 네가 잘돼 정말 좋다(웃음).”

 위:“우리은행 감독으로 간다고 말씀드릴 때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임 감독님이 다소 당황하시는 모습도 봤다.”

 -신한은행이 지난 8일 대형 트레이드를 했다(신한은행은 강영숙·이연화·캐서린 크라예펠트를 주고 KDB 생명으로부터 조은주·곽주영·애슐리 로빈슨을 받았다).

 임:“선수단이 우승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우리은행을 의식하기도 했지만 그보단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위:“감독님이 언제든 변화를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시즌 중이어서 깜짝 놀랐다.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신한은행이 더 강해질까 봐) 밤에 잠이 안 오더라.”

 -이 같은 시즌 판도를 예상했나.

 임:“우리은행이 이렇게 잘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3라운드까지 반짝 하는 걸로 봤다. 위 감독이 정말 잘 가르쳤다. 신한은행에서 배운 점도 많았을 거야(웃음).”

 위:“운동 많이 시키는 걸 배웠다. 임 감독님 지도 스타일의 70~80%를 접목했다. 하지만 신한 선수들과 우리 선수들은 다르지 않나. 나머지 20~30%는 변화를 줬다.”

 -두 팀의 라이벌전이 치열하다.

 임:“나는 가만있는데 얘(위 감독)가 신한은행을 너무 이기려고 해. 위성우 보기 싫어 남자농구로 가든지 해야지(웃음).”

 위:“우리은행이 신한은행에 1년에 1승씩 했으니까요(웃음).”

 두 팀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날 가능성이 크다. 챔프전 얘기가 나오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잠시 싸늘해졌다. 그래도 헤어질 때 위 감독은 깍듯이 고개 숙여 선배에게 인사했고, 임 감독은 흐뭇한 미소로 후배를 보냈다.

경산=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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