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90년대 女 태권도 간판 조향미

중앙일보

입력

스타는 지도자로 성공하지 못한다?

스포츠계의 오래된 속설이다. 스타는 자기 중심적이고 실패한 경험이 적어 '보통'의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는 데 근거한 말이다. 그러나 속설은 속설(俗說)일 뿐이지 정설(定說)은 아니다.

1990년대 한국 여자 태권도의 간판 스타 조향미(28.인천시청.사진)가 지도자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 7일 끝난 제주 세계선수권대회에 한국 여자대표팀 트레이너로 참가한 조향미는 첫 국제 무대에서 여자팀이 금6·은1의 좋은 성적으로 종합 우승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조트레이너는 1995년부터 99년까지 웰터급과 라이트급을 오가며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를 이룩해 '남자 김제경-여자 조향미'라는 태권도계의 양대 산맥을 구축했다.다만 지난해 시드니 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이선희(삼성 에스원)에게 패배,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놓친 데 이어 10월 전국체전에서도 3위에 그치며 현역 마지막을 불운하게 마감했다.

"아직도 두 경기 모두 제가 이겼다고 확신합니다. 화병도 났고, 태권도에 신물도 났습니다. 전국체전 땐 당시 심판을 보셨던 분이 제게 다가와 '네 마지막 경기인 줄 몰랐다. 알았으면 그렇게 판정 안했을텐데…'하고 말했을 때는 정말 어이가 없더라고요."

'아픔'은 지도자로선 '성숙'의 계기였다.

"세계대회 4연패를 한다는 자세로, 코치보단 언니라는 마음으로 후배들을 가르쳤어요."

특히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 여자 선수 대부분이 국제 경험이 없어 조트레이너의 '산 증언'은 실제 훈련보다도 효과적이었다. 키가 작은 웰터급의 김혜미(18.서울체고)에겐 스텝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인 뒤 받아치기에 주력할 것을 주문했고, 플라이급의 이혜영(19.경희대)에겐 긴 다리를 이용해 상대의 얼굴을 공격해 기선을 제압할 것을 가르쳤다. 라이트급의 김연지(20.한체대)도 "조트레이너가 알려준 심리싸움 등 잔기술이 실전에서 가장 큰 무기가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조트레이너는 다음달 9일 두살 연하의 연구원과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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