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 밀어주고 농업엔 보조금 퍼주고 … 아베 효과 오래 못 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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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이 적잖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선 엔화 가치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렇다면 그의 경기부양과 금융통화정책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13일(현지시간)자엔 아베의 정책을 보는 두 가지 시선이 들어 있다.

 먼저 NYT는 이날 사설에서 “아베의 1160억 달러(120조원가량)짜리 경기부양책은 방향에선 옳다”면서도 “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제 회생을 위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NYT는 “지진 피해 복구에 쓸 돈이 대부분인 인프라 투자, 보건과 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은 빈사 상태의 일본 경제에 숨통을 불어넣을 수는 있을 듯하다”고 했다. 하지만 구조개혁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기득권 타파다.

 NYT는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이 농촌 유권자나 정부 의존형 은행과 기업들이 관행적으로 보장받아 온 기득권을 깨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주요 기업들의 경쟁력과 소비자의 구매력이 크게 저하돼 있다. 급속한 고령화에다 인구마저 줄고 있다. 빚에 허덕이는 ‘좀비 기업’들이 정부 지원으로 근근이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제조업은 너무 낡았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이 많은 인력을 보듬고 있다. 반면 에너지와 보건기술 등 잠재력이 큰 분야의 전문 인력은 턱없이 모자란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20%에 이른다. 선진 주요국 중 최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 비춰 NYT는 아베의 부양책이 “반짝 효과를 내는 데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현 집권 자민당은 이미 경기부양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1990년대 국채를 찍어 조달한 자금으로 거품 붕괴에 따른 침체를 막아보려 했다. 그러나 결말은 바로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이었고 정부 재정은 사실상 거덜이 났다.

 NYT는 “자민당은 부양책이 단기간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부양책만으론 지속적인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실 기업의 정리와 농업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 이민 허용 등 구조개혁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NYT는 “일본의 유권자들이 2009년에는 개혁적 처방을 기대하며 정권 교체를 선택했지만 집권 민주당 정부는 무능과 정쟁으로 경제난을 오히려 가중시켰다”며 “아베 내각도 지속적인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단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같은 날 NYT엔 색다른 칼럼이 실렸다. 글쓴이는 바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였다. 그는 아베가 물가가 연 2% 이상 오르도록 하라며 일본은행(BOJ)을 압박하고 있는 일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크루그먼은 “아베는 (중앙은행 독립이라는) 나쁜 교리와 결별하고 있다”며 “그의 시도가 미국 등이 불황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크루그먼은 “일본 정치를 아는 사람들이 아베를 좋은 인물로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며 “실제로 그의 외교 정책은 아주 나쁘고 그의 경기부양은 정치 실력자들의 예산 나눠 먹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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