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DJ에 야당 믿어라" 말했다가 불려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7면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원들과 당직자들이 14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참회의 의미로 삼배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비대위원장은 대선 패배에 대해 “모든 것이 민주당의 책임임을 통감한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문희상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나아갈 방향이 ‘담대한 진보(현 당 강령)’인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정립한 중도개혁인지 전당대회에서 국민과 당원의 표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3월 말~4월 초 사이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지도부뿐 아니라 노선도 새로 정하겠다는 의미다. 문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비대위원 인선이 마무리된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 1002호에서 이뤄졌다.

 - 당내 노선투쟁이 심해지고 있다.

 “대선 패배 후 ‘한쪽으로 치우쳐졌다’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더군. 전대 준비위는 룰만 정하는 게 아니다. 그 안에 노선과 강령을 다룰 위원회를 따로 둬 이들이 중앙뿐 아니라 전국 시·도당을 돌아다니며 끝장토론을 할 거다. 북한과 안보 문제에 대해, 혹은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 토의하고 전대에서 표결에 부칠 거다.”

 문 위원장은 14일 첫 비대위 회의에서 “60년 정통 야당이라는 역사만 빼고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했다. “당명과 당 로고 같은 형식부터 가치(노선)까지 모든 것이 포함된다”는 게 그의 의지다.

 - 친노(노무현계) 책임론이 커지고 있는데.

 “책임이 있다. 하지만 계파를 선악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 친노가 주류가 된 건 지지하는 국민이 있어서다. 문재인 전 후보에 대한 지지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은 친노가 반성하고 조용히 있지만 시간이 지나 당내 선거를 하면 그들이 중심에 설 수도 있다. 친노는 정치의 현실이다. 중요한 건 계파가 아니라 실사구시다. 실질적 쇄신 말이다.”

 - 2013년 지금의 시대정신은.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군정종식, DJ는 평화적 정권교체, 노 전 대통령은 상식, 지금은 신뢰다.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났을 때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 없이는 일어설 수 없다)을 얘기했다. 2007년 대선 후에도 내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똑같이 무신불립을 말했다.”

 비대위원장에 추대된 9일 그와 박 당선인의 인연이 화제가 됐다. 그는 야권의 대표적인 호박(好朴) 인사다. 그는 박 당선인이 신뢰를 실천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 당선인과 만날 건가.

 “만나고 싶다. 연석회의든 영수회담이든 한다면 하겠다. DJ 정부 초기 정무수석 시절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섰다. 그런데 DJ가 야당 탓을 하더라. 그건 아니라고 봤다. 대통령이 됐으면 과거의 갈등은 잊어야 한다. 야당을 믿어야 한다. 야당도 대통령을 믿어야 한다. 그렇게 대통령께 말씀드렸다. 그 얘기 당선인에게도 해야 한다.”

 - 그 쓴소리로 정무수석에서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물러난 건가.

 “이건 책에서 쓰려고 안 하던 말인데…, 당시 여소야대를 극복하기 위해 야당 인사 20명 정도를 데리고 왔다. 난 이걸 ‘TK계 낚시질’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TK 인사(김중권 당시 비서실장 지칭)가 그런 식으로 의원을 빼왔는데, 그건 옳지 않았다. 나는 YS의 PK(부산·경남)까지 아우르는 가치연대, 즉 ‘그물론’을 강조했다. 가치가 맞는다면 큰 연대를 통해 정계개편을 해야 했다. 하지만 청와대 TK 인사의 반대로 실패했다. DJ가 나를 부르더니 ‘조금만 쉬었다 오라’고 했다.”

 - DJ의 정무수석,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거친 원로가 됐다. 비대위원장은 어떤 의미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나의 정치인생은 끝났다. 하물며 노 전 대통령도 갔는데…. 비대위가 할 일은 많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 비대위처럼 27세짜리 이준석이 와서 의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그런 막강한 ‘비상대권’이 아니라는 거다. 토론을 일으키는 게 내 몫이다. 그런 가운데 새 길이, 새 지도부가 발견되리라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