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서울서 일 보고 세종서 잠자고 눈뜨면 서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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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앞 주차장에 서울과 수도권 거주 공무원들이 타고 온 통근버스가 주차돼 있다. 통근버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도권과 세종시를 왕복 운행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총리실·기획재정부 등 세종청사 1차 이전 대상 6개 부처 입주가 완료된 지 한 달여. 세종시의 부작용이 본격화하고 있다. 행정의 낭비와 비효율이 심각한 지경이다.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총리와 장관들은 좀처럼 세종시에 머무르는 경우가 드물다. 올 들어 김황식 총리의 일정을 보자.

1일 국회 본회의·임시국무회의(서울청사)→2일 정부시무식(서울청사)→3일 국무회의(청와대)→4일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여의도)→5, 6일 주말(세종 총리공관)→7일 간부회의(세종청사)→8일 국무회의(서울청사)→9일 공주대 특강→10일 정전대비 훈련 참관(세종청사)→11일 국가정책조정회의(서울청사)→12, 13일 주말(세종 총리공관).

 김 총리가 세종청사에서 가진 공식 일정은 7, 10일 단 이틀이었다. 세종시 총리공관은 부인과 함께 주말을 보내는 용도로 쓰일 뿐이다. 관저는 사실상 ‘주말 별장’인 셈이다. 물론 김 총리는 평일 서울에서 업무가 있더라도 가급적 잠은 세종 공관에서 잔다. 그러나 잠자기 위해 세종으로 내려 오고, 다시 잠만 잔 뒤 서울로 올라가는 일이 허다해 아까운 시간을 길에다 쏟아붓고 있다.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과 국토해양부 권도엽 장관의 숙소는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세종시 첫마을 안쪽에 있다. 149㎡(약 45평)짜리 이 아파트는 그러나 주인을 만난 적이 거의 없다. 두 장관의 일정 대부분이 세종시 밖에 있어서다. 세간의 비판이 뜨겁다 보니 박재완 장관은 지난 8일 바쁜 일정에도 단 한 차례 세종 숙소를 찾아 하룻밤을 보냈다. 박 장관은 “서울에 일정이 많아 세종에 내려와도 두 시간 이상 있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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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서울에서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총리·장관뿐 아니다. 국장급 이상 공무원도 상황이 심각하다. 서울에서 회의가 많다 보니 서울~세종 왕복 두 차례에 걸쳐 최소 하루 10시간을 도로에서 버려야 한다. 재정부의 한 국장은 “새벽에 집을 나서 셔틀버스를 타고 세종시에 내려왔다가 오후에 회의가 있어 서울에 올라간 뒤 업무를 보기 위해 다시 내려오고, 또 저녁엔 서울로 퇴근을 하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행정비효율의 대안으로 제시한 ‘화상회의’도 갈 길이 멀다. 아직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것이다. 오는 17일 열리는 차관회의가 사실상 첫 화상회의가 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부처별 화상 회의실은 아직 설비 설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한 차관은 “행정부는 그렇다 쳐도 국회에서 부르는데 안 갈 수 없다. 화상회의 하자는 공무원을 입법부에서 좋게 볼 수도 없고 나중에 예산이나 법안 심의 등에서 찬밥신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문제는 지금까지가 ‘맛보기’ 수준이라는 데 있다. 정부조직 개편이 완료되고, 부처 이전이 계획대로 추진될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당장 ‘해양수산부를 어디에 두느냐’도 골칫거리다. ‘해수부 부산 설치’는 박근혜 당선인의 약속이다. 만약 공약대로 해수부가 부산에 신설되면 정부청사는 서울청사와 세종청사·과천청사·대전청사에 부산청사까지 더해지게 된다. 국무회의를 열면 장관을 전국에서 소집하는 셈이 된다.

  중앙대 김영봉(경제학) 명예교수는 “그간의 보고서를 보면 노무현 정부든 한나라당이든 2004년 이후 행복도시를 구상할 때 행정기관 분산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며 “언젠가는 다시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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