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번 쓰고 지우는 꿈의 전자종이 실용화 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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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시대라지만 종이의 위력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만들어 놓고도 대부분 종이에 프린트한다. 아무데나 들고다니며 볼 수 있고, 여러장을 펼쳐 놓고 비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이의 약점은 컴퓨터처럼 내용을 마음대로 지우고 다시 쓸 수 없다는 것. 이런 약점을 극복한 종이는 없을까.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1월호는 이같은 단점을 극복한 '전자종이'의 개발 현황을 소개했다.

사실 전자종이는 종이라기보다 노트북 컴퓨터의 액정화면 같은 화면 표시장치를 종이처럼 얇고 부드러우며 전기도 거의 안들게 만든 것이다.

현재 전자종이는 보통 프린트용의 4배 두께에 호출기용 작은 건전지 세개면 2년 동안 수시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 수 있는 제품까지 개발됐다.

전자종이는 부분부분 다른 전기를 띨 수 있는 두 장의 얇은 특수 플라스틱과,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지름 0.05㎜ 정도의 작은 구슬들로 이뤄져 있다.구슬 하나하나는 반쪽은 희고 반쪽은 검은데 흰쪽은 음전기를, 검은 쪽은 양전기를 띠고 있다.

구슬들은 전후좌우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돌 수 있게 돼 있다. 이 상태에서 플라스틱이 전기를 띠게 하면 전기적인 힘에 의해 구슬이 돌아 흰 부분이나 검은 부분이 위를 향하게 된다.

이를 플라스틱 표면 위에서 보면, 점처럼 작은 검은 구슬들이 모여 글씨나 그림을 나타내는 것이다. 플라스틱 표면이 적절한 전기를 띠게 해 전자종이에 글을 쓰고 지우는 것은 전자종이용 특수 프린터가 한다.

전자종이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곳은 미국의 사무기기 전문회사
제록스(http://www.parc.xerox.com)와 MIT의 연구소 '미디어 랩'(http://www.media.mit.edu). 두 곳에서는 이미 전자종이 상품을 개발,미국의 일부 백화점에서 시험적으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식으로 치면 '30% 세일'등의 표시를 그때 그때 새 종이에 쓰는 것이 아니라 전자종이를 달아놓고 지웠다 썼다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2005년이면 실제 종이 두께의 전자 종이가 나오고, 2010년이면 잡지나 책을 전자종이가 대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번 본 전자종이 잡지를 잡지사에 가져가면 약간의 값을 치른 뒤 원래 내용을 지우고 새 내용으로 바꿔 인쇄해주는 식이다.

전자종이가 완전히 종이를 대체하면 종이의 원료인 나무를 벨 필요도 없어져 환경 보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무선으로 전자종이의 내용을 바꾸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이것이 개발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 읽은 뒤 버튼 하나를 눌러 책 내용이'걸리버 여행기'로 바뀌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책이 빼곡이 꽂힌 책장을 자랑하는 모습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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