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저항에 “당선인 심기 불편” … 부처는 “돈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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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왼쪽 셋째)이 13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와 관련한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관료 사회에 경고장을 보냈다.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정부 부처가 당선인이 제시한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언론을 통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에 대해 당선인이 불편한 마음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부처에서 (대선 공약에 대해) 난색을 표명했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 실행이 어렵다는 보도가 나오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다. 박 당선인의 대선 공약을 놓고 각 부처가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의심이 깔려 있는 발언이다. 최근 관련 보도론 ‘복지부, 4대 중증 질환 진료비 100% 보장에 난색’ ‘검찰, 대검 중수부 기능 존속 희망’ ‘국방부 병역복무기간 단축에 우려’ ‘국토해양부, 목돈 안 드는 전세 공약 보완 요구’ 등이 있다.

 박 대변인은 “박 당선인은 (부처가)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국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극적으로 과거 관행에 기대 문제를 유지해 가려는 부분에 대해 불편해한다”고 지적했다. 각 부처는 예산 문제를 들어 반대하지만 그 속엔 보신(保身)주의 내지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새 정책을 추진하려는 대통령 당선인과 기존 방식이 편한 관료사회의 갈등은 정권교체기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2003년 1월 11일 노무현 당선인은 인수위 직원조회에서 “공무원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으나 각도를 달리해 보면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정부에서 온 보고서를 보면 공약에 나온 정책에 대해 결론을 먼저 제시하는데 이런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2008년 1월 13일 이명박 당선인도 인수위 종합업무보고 때 “주요 부서에 있던 사람, 요직에 있던 사람 중에서도 시대 변화에 못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며 “의도적으로 변화에 반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정부조직 개편에 일부 부처가 저항하자 옐로카드를 내민 것이다.

 박 대변인은 박 당선인이 격노한 것까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이 자신의 심기를 공개 브리핑에서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그래서 “해보려고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는 일부 부처의 비협조에 박 당선인이 상당히 화가 난 것 같다”는 얘기도 나돈다.

 박 당선인은 지난 7일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은)정치권에서 하는 얘기는 그냥 그때그때 하는 얘기라면서, 안 믿는 게 대부분이지만 저는 공약을 발표할 때 그것을 만든 분들이 피곤할 정도로 따지고 또 따졌다. 정말 아주 정성 들여서 지킬 것”이라며 공약 이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 때문에 인수위 관계자는 14일 “당선인 입장에선 부처가 자기를 길들이려 한다고 느꼈을 법하다”며 “대변인을 시켜 입장을 내놨지만 부처가 가볍게 받아들여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부처에선 “당선인의 공약을 이행하기 싫어서 일부러 반대하겠느냐. 결국은 돈 문제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가령 보건복지부는 암·심장병·뇌질환·희귀병 등 4대 중증 질환 진료비의 100% 정부 보장이란 공약과 관련해 박 당선인은 연간 1조5000억원이 든다고 했지만 추가비용이 계속 들어가 적게는 50%, 많게는 1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본다. 병원도 환자에게 쉽게 권하게 되고 환자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안 돼 의료진에 이것저것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병 복무기간 18개월(육군 기준)로 단축과 관련해 박 당선인 측이 사병 대체인력인 부사관을 연 2000명씩 5년간 양성(1만 명)하면 전력공백을 메울 수 있고 예산은 2500억원 정도 들 것이란 입장인 반면 국방부는 대체인력은 약 3만 명 정도 길러야 하고 예산도 1조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박 당선인의 공약 중 상당수에 예산 문제가 걸려 있는 건 사실인 만큼 지금부터 일부 공약에 대해선 출구전략을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일부 공약에 대해선 인수위 단계에서 수정·보완하거나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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