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숫자·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날이 갈수록 수자의 행렬이 늘어간다. 생활 주류의 사방팔방을 가지각색의 삭자가 꽉 메워 가고 있다. 무엇이고 그저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해서는 곧이 듣지 않고, 수자와 수식과 백분율과 통계표를 내걸고 풀어 대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세장의 수자가 과연 정확하고, 또 그 모두가 뜻이 있는 것이냐. 가령 지난번 세계 공산주의자들이「모스크바」에 모였을 때 나온 수자에 이런 것이 있다(4월15일자「타임」지). 소련은 새로운 5개년 계획 하에 1천8백50만대의 냉장고, 3천만대의「라디오」와 전축, 2천7백만 대의 TV, 그리고 2백50만 대의 자가용차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가 어쨌단 말이냐. 압제에 시달려 온 소련인들에게 3천만냥의 라디오와 2천7백만대의 TV는 복음이 아니라 횡액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많은 숫자의 확성기와「스크린」을 통해서 밤낮으로 관계수자와 조작된 통계와 기상천외의 백분율의 파상 공세를 받아내야 할 그들의 처지가 불쌍하다.
철과 대나무 장막 저편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숫자가 전연 무의미하거나 허무맹랑한 것이어서, 절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일. 한편 우리는 우리대로 숫자에 대한 오해와 과신을 청산해야 한다. 매약 광고에 나오는 함유량 숫자와 약 자체와는 별반 관계가 없어서 중독자가 무수히 나오고 목숨까지 잃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있다.
세상에 내놓을 숫자는 함부로 조작할 수 있는 한편, 정작 알려야 할「인포메이션」과 그에 따르는 숫자는 감쪽같이 숨겨 넘길 수고 있다는데 숫자의 죄가 있다. 나타난 숫자보다 영영 나타나지 않는 숫자 쪽에 진실이 가려져 있지 않은가.
그 다음 여론조사니 무슨「서베이」니 하는 숫자놀음이 있다.
「갤럽·폴」이라는 유명한 방식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미군의 월남주둔의 가부와 같은 세기적 중대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인가. 숫자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숫자를 지혜롭게 다루는 지능과 함께 늘어나야 한다 .부연이면 숫자에 속기 마련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