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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스몰 타임 크룩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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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액자의 크기로 그림 가치를 판단하는 남편과 화가라고는 피카소.미켈란젤로밖에 모르는 아내가 벼락부자가 됐다.

집안을 금빛으로 번쩍번쩍 '도배'했으나 상류사회는 그들을 무시한다. 겉으론 존중하는 척하지만 화장실에선 무식쟁이 졸부라고 소곤거린다.

분개한 부부, 인생을 바꾸겠다고 다짐한다. 돈으로 교양을 사겠다고 나선다. 그래도 옛날 먹었던 치즈버거가 그리운 남편, 오르지 못할 나무는 일찍 포기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는 막무가내다. 심지어 남편마저 버릴 태세다. "당신은 내 취향이 아니야"라며 교양 쌓기 속성반에 등록한다. 젊고 멋진 화상(畵商)을 초빙해 거금을 투자한다.

뉴욕의 재담꾼 우디 앨런이 감독.주연한 '스몰 타임 크룩스'의 얼개다. 현대인의 부조리한 모습을 자근자근 씹어온 앨런 특유의 유머와 독설을 만끽할 수 있다. 언뜻 조선시대 실학자 박지원의 풍자 소설 '양반전'도 생각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뜻일까. 그건 너무 단순하다. 앨런의 주된 관심사는 부유층의 허위다. 교양을 교양 자체로 여기지 않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장식물로 생각하는 세태를 풍자한다.

얘기가 짧게짧게 끊어지고, 등장인물이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는 탓에 90여분이 후딱 지나간다. 앨런의 하이 코미디 감각이 십분 살아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단골 주연인 휴 그랜트가 앨런의 영화에 첫 출연했다. 음악.그림.문학.종교.와인 등에 정통한 화상으로 나와, 영어 사전을 A부터 줄줄 외우면서까지 교양을 넓히려고 발버둥치는 중년 부인의 개인교사가 된다. 물론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돈이다.

영화는 전과자 출신의 접시닦이 남편 레이(우디 앨런)와 손톱 미용사 아내 프렌치(트레이시 울먼)의 일확천금 확보 작전에서 시작한다.

얼치기 동료들을 모아 은행을 털려는 레이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대신 그들 부부가 거사용으로 은행 옆에 마련한 과자 가게가 대박을 터뜨리며 엉망진창 폭소극이 벌어진다. 오는24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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