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신도시 살기 막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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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14일 오후 6시 인천국제공항 배후지원 도시인 인천시 중구 운서동 공항신도시 풍림아이원(2차) 아파트 단지 앞. 왕복 4차선 도로가 시원스레 뚫려있지만 달리는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도로 옆 아파트는 지난해 11월 입주가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입주율이 30%가 안 돼 '불꺼진 방'이 수두룩하다.

이는 공항신도시라는 기대감을 갖고 아파트를 분양받은 주민들이 편의시설이 크게 부족하고 교통 여건마저 좋지 않자 대거 입주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자 박연숙(31.주부)씨는 "매일 오후 9시쯤 상가가 문을 닫으면 인적이 끊겨 암흑의 도시가 된다"고 말한다.

총 65만평 규모의 공항신도시는 1995년 개발을 시작했으며 현재 아파트 4천94가구가 지어졌다.

◇턱없이 부족한 편의시설과 버스편=2001년 초 주민 입주가 시작됐는데도 아직까지 제대로 쇼핑시설이나 종합병원이 단 한곳도 들어서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입주민들은 아이 옷 한벌을 사기 위해 인천시 계양구나 서울 등으로 나가야 한다. 의료기관도 내과와 치과.한의원 등 세곳밖에 없어 소아과나 피부과.안과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처지다.

버스는 지난해 3월에야 겨우 1개 노선(공항~신도시)이 개설됐을 뿐이다. 하지만 배차 간격이 길어 승용차가 없는 주민들은 신도시에서 한발짝도 움직이기 힘든 실정이다.

인천 나라부동산 오명묵(33)대표는 "우선 집부터 짓고 보자는 과거 신도시 개발의 악습이 되풀이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비싼 물가와 교통비=아파트 단지마다 상가가 있기는 하지만 물건값을 크게 올려받고 있어 장보기가 겁날 정도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30%, 야채와 과일은 30~40% 정도인천 시내보다 비싸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인천이나 서울로 나가 장을 보고 싶어도 공항고속도로 통행료 6천~1만2천2백원(왕복 기준)이 부담스럽다.

주부 이유선(38)씨는 "업소들끼리 담합한 것처럼 미장원의 커트.퍼머 값이 다른 지역보다 5천~1만원씩 비싸다"며 "생활비가 절약될 줄 알고 신도시에 입주했는데 오히려 더 드는 것 같다"고 불평했다.

또 주민들이 공항에서 버스를 놓쳐 택시를 타면 기사들이 6㎞ 거리를 오는데 요금을 3만원씩이나 요구해 승강이를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아파트 매매가는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아파트 1, 2층 저층의 경우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전세가는 24~27평형 2천5백만~3천5백만원, 31~35평형 5천만~6천만원 수준이다.

◇환락 시설만 흥청=당초 주거.업무.상업시설 등을 골고루 갖춘 신도시 조성계획과는 달리 러브호텔 등 유흥.퇴폐업소만 들어서고 있다.

현재 신도시 중앙로를 따라 모텔 대여섯곳이 들어섰으며 주변 건물에는 유흥주점과 안마시술소.노래방 등이 진을 치고 있다. 웬만한 상가 건물 입구와 벽면은 이들 업소를 알리는 간판이 10여개씩 걸려 있다.

주부 최정순(39.금호베스트빌)씨는 "학생들이 등.하교 때마다 룸살롱과 안마시술소 옆을 지나다녀야 하는 등 교육 환경이 나쁘다"고 말했다.

◇시.구청 대책=신도시 개발 초기 대형 상가나 병.의원들은 너도나도 입주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금은 수익성을 보아가며 입주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한발짝 물러난 상태다.

이에 따라 구청 고위간부들이 지역 유통업체와 병원 관계자 등을 수시로 만나 입주를 설득하고 있다.

또 신도시와 공항을 연결하는 시내버스 노선을 늘리고, 서울.인천~공항을 오가는 좌석버스 업체와 협의를 벌여 신도시를 경유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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