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 찾는 「게르만」-조각난 독일 정치인 교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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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서 두 독일이 전후의 국토 양단 이후 처음으로 동의함으로써 양독간의 관계와 독일문제 자체가 새로운 각도에서 세상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같은 파격적인 동·서독 정치인의 교류는 동독의 발상으로 2월이래 논의되어 오다가 서독의 사민당이 지난 15일 이 계획에 조건부로 동의하고 동독의 「울브리히트」가 19일 사민당측이 내세운 조건을 수락함으로써 완전히 실현 단계에 이른 것이다. 다만 동·서독의 이 정치인 교류에 서독측에서는 제1야당인 사민당이 참가하고 여당인 기민당은 전혀 호응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동·서독 발족 17년 사상 처음있는 이 행사의 의의가 자칫하면 과소평가될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민당과 「울브리히트」의 사회주의 통일당(공산주의 정당) 이 합의한 계획에 의하면 사민당 소속 정치인들은 5월9일부터 13일 사이에 동독의 「칼·마르크스·슈타트」에서 열리는 공개 토론회에 참가한다. 사민당 당수인 「빌리·브란트」서 「베를린」시장은 부 당수「헤르베르트·베너」 및 「프리츠·에틀러」를 대동하고 직접 동·서독의 경계선을 넘어 이 토론회에 나가 열변을 토할 작정이다.
한편 동독 정치인들은 5월16일부터 20일 사이에 서독 땅의 「하노버」에서 사민당 정치인들과 토론을 갖기로 되어있다. 이 두개의 이색 토론회에서는 주로 통독 문제가 토의될 것으로 보이는데 「울브리히트」는 19일 독일의 기본 존재를 해결하는데 이번 행사가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서「베를린」의 경계선엔 동「베를린」을 탈출하다가 피살된 독일인들의 묘비가 두동강이 난 독일과 「베를린」의 비극적인 운명을 울분으로 증언하고 있다.
바로 그 경계선을 넘어 동·서독의 정치인들이 피아의 땅을 밟게 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서독 정치인 교류는 어쩌면 지난 17년을 매듭 짓는 획기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상 고정논자인 동독과 현상 타파논자인 서독 정치인들의 대화엔 스스로 한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에르하르트」수상 정부는 동·서독 정치인의 사실상의 「합동회의」라고도 할 이 정치 토론회에 경계하는 시선을 던지고있다.
그것은 「울브리히트」가 동·서독의 정치인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자리를 같이하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동독 정권의 존재를 서독측 정치인들에 의하여 사실상 확인받는 정치적인「기정사실」을 쌓으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불신 태도는 동독이 최근 「유엔」가입을 위한 공작을 또 한번 맹렬히 벌인 뒤를 이어 불쑥 정치 토론회를 제의했다는 시차가 증명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에르하르트」수상이나 그의 기민당은 이 정치 토론회를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외면할 뿐 적극적인 방해는 하지 않을 태도다.
기민당과 더불어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에리히·멘데」의 자민당은 이 정치 토론회에 적극 찬성의 뜻을 밝혔다. 물론 동·서독의 정치인 교류가 그대로 통독의 숙원을 풀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 독일인은 드물다.
그러나 61년 「울브리히트」정권이 「베를린」경계선을 봉쇄한 것을 계기로 독일 문제는 항구적인 현상 고정의 제자리걸음만 걸어왔다. 그러는 사이 세상의 정치적인 관심의 초점은 「베를린」주변에서 월남으로 옮겨졌다. 이런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번 정치 토론회는 망각 지대서 교착 상태에 빠져버린 독일·「베를린」문제를 국제적인 현안 문제로 「복권」시키는 계기가 될 것은 틀림없다. 「에르하르트」수상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사민당이 이 행사의 주역을 맡고 「통독의 기관사」로 자처하는 자민당이 그에 찬성하고 보면 국민들이 이에 호응하는 경우 고립화의 궁지에 몰릴 수도 있는 적신호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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